그제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은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 대치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을 예고했다.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북한대표단을 외면한 채 "태도 변화가 없으면 단호히 제재할 수밖에 없다"고 강경입장을 확인했다. 이에 맞서 북한대표단은 '적대정책 해제' 주장을 되풀이했다. 북한 외무성은 클린턴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기세를 돋궜다.
이런 적대적 공방은 6자회담 참가국 가운데 북ㆍ미와 한ㆍ중ㆍ일 5개국 외교장관 등이 참석한 ARF 회의가 대화 물꼬를 틀 것이라는 기대가 성급한 것임을 확인시켰다. 클린턴 장관은 회의에 앞서 북한을 '말 안 듣는 철부지'로 비하하며 압박 강화 의지를 부각시켰다. 북한도 격이 낮은 수석대표를 보내 미국과의 대화를 기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북한이 한동안 대미 비난을 삼간 것을 대화 모색용으로 본 시각도 있다. 그러나 2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국제적 비난과 제재를 자초한 북한으로서는 아세안 국가를 비롯한 ARF 참여국의 대북 인식을 새삼 악화시킬 이유가 없다. 이미 '핵 보유국 의지'를 과시한 만큼, 소득 없는 말의 도발을 계속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북한의 선제 공세에 맞서 미국이 제재와 압박에 주력하는 것은 지금 국면에서는 당연하다. 그런 만큼 미국과 우리 정부의 대화 노력을 촉구하는 것은 공허한 측면이 있다.
대화 재개에 집착하기보다는 미국이 북ㆍ미얀마의 핵거래 의혹까지 거론하며 포위, 압박하는 의도를 헤아리는 게 바람직하다. 북한이 표적인 듯하지만, 훨씬 큰 목적은 중국과의 '큰 게임' 내지 '빅 딜'을 위해서라는 분석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은 곧 중국과 21세기 경쟁과 협력관계 설정을 위한 전략대화를 갖는다. 이 전략적 관계 설정이 간단치 않은 점에 비춰, 북미 관계도 정체 상태에 머물 공산이 크다. 이런 마당에 고작 ARF 의장성명이 북한 주장까지 담은 것을 놓고 지난해에 이어 또 다시 '외교 실패'를 논란하는 것은 핵심을 멀리 벗어났다. 큰 그림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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