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미디어법 대리투표와 재투표의 위법성을 다투는 권한쟁의 심판 및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23일 접수됨에 따라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갔다. 이번 사건이 대리투표와 재투표의 위법성에 대한 사실상 헌재의 첫 판례가 될 수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권한쟁의 심판이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들이 서로 기관간에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할 때, 헌재가 책임소재와 위법성을 가려주는 것이다. 국회의원도 국가기관으로 보기 때문에, 국회의장이나 다른 국회의원의 부당한 의사진행으로 특정 국회의원의 표결권이 침해됐다면 권한쟁의 심판 대상이 된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방송법 재투표가 '일사부재의 원칙'(한번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중에 다시 안건으로 올리지 못한다는 원칙)에 어긋나는지, 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나라당 의원들의 대리투표가 사실이라면 그것이 국회법을 위반하고 야당 의원들의 표결권을 침해했는지 등이다. 헌재 관계자는 "권한 침해가 인정되면 원칙적으로 가결이 무효가 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과 유사한 권한쟁의 심판이 제기된 적이 있다. 2005년 12월 사학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당시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의 대리투표와 질의토론 생략을 이유로 "가결은 무효"라며 권한쟁의 심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지난해 4월 "국회 회의록 등에 따르면 대리투표 등 사실관계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사학법 개정안 처리 때와는 내용이 다르다는 견해가 많다. 국회 부의장이 투표종료를 선언한 뒤 바로 재투표에 들어간 방송법의 경우 사실관계가 명확하다는 점에서 헌재가 위법성에 대해 치밀하게 따져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리투표 의혹도 국회 본회의장 폐쇄회로TV 및 방송사들의 증거화면과 현장 상황에 대한 증언 등이 풍부해 위법성 여부에 대해 실질적인 첫 판례가 나올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권한쟁의 심판은 헌법재판관 9명이 모두 참여하는 전원재판부에서 심리하게 되는데, 공개변론도 열어야 하기 때문에 결정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 같다. 헌재는 본안 심리 전에 해당 법률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지 먼저 심리할 예정이다. 헌재 관계자는 "나중에 위법이 인정돼 법률이 무효가 될 경우 방송업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에게 피해 발생이 예상되는지 등의 급박성을 따져보고 가처분 신청 처리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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