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바섬을 탈출해 파리 무혈 입성에 성공한 나폴레옹은 프랑스 제국의 부활을 선언했다. 제국 해체로 얻을 영토와 이익에 욕심을 내고 있던 연합국들은 두려움에 떨며 다시 동맹군을 조직했다. 1815년 6월18일 벨기에 브뤼셀 남부 워털루. 나폴레옹 군과 웰링턴이 지휘하는 동맹군 간 운명의 한 판 싸움이 벌어졌다. 결과는 나폴레옹 군의 완패. 질적인 면에서 동맹군에 앞섰으나 전날 쏟아진 폭우와 전술적 오판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워털루는 나폴레옹 군 2만5,000명의 피로 물들었고, 나폴레옹의 복귀는 백일천하로 막을 내렸다.
▦ 당나라 시인 두보가 노래했듯이 영웅의 몰락은 후세 사람들을 눈물 짓게 한다(長使英雄淚滿襟). 워털루 전투가 소설과 영화로 재현되고 노래로 불려지는 것은 안타까움 때문일 게다. 이번엔 워털루 전투가 워싱턴 정가에 정쟁의 소재로 등장했다. 한 공화당 상원의원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야심 찬 의료보험 개혁 추진을 두고 "오바마의 워털루가 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은 것이다. 오바마가 의료보험 개혁에 쏟아 붓는 열정은 대단하다. 국정과제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의원들과의 면담, 주례 라디오 연설, 인터넷, 타운미팅 등을 통해 개혁 필요성을 역설해오고 있다.
▦ 22일 저녁(현지시간)에도 TV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의보 개혁은 경제 위기 타개의 핵심이라며 연내 타결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의 의료보장체계의 취약성은 악명이 드높다. 돈은 돈 대로 들어가는데 3억 인구 가운데 6분의 1인 5,000만명은 의료보장비를 낼 돈이 없어 전혀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대폭 수술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지만 문제는 돈이다.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이미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는데 돈이 남아있을 리 없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부자 증세다.
▦ 공화당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민주당 내에서조차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바마는 특유의 설득과 소통 방식으로 돌파하려고 하나 여의치 않다. 취임 6개월이 지나면서 진정성을 무기로 하는 그의 소통 노력 약발이 크게 떨어진 탓이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오바마 지지도가 급격한 내리막을 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지지도의 추락 양상은 지미 카터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소통과 희망 정치의 새 경지를 열고 있다고 기대를 모아온 그가 정말 워털루 전투를 앞두고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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