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사굿 장단이라는 거에요. 오케이?" "It's not easy for me.(저한테는 쉽지 않아요)"
지난 18일 오전 충남 부여군 부여청소년수련관 2층 전통문화예술체험관. 장구 소리에 한국어, 영어까지 뒤섞여 시끌벅적했다. 흑(黑), 백(白), 황(黃). 피부색이 다른 수강생 37명은 온돌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은 것이 익숙지 않은 듯 자꾸 엉덩이를 들썩였다.
"자, 이렇게 왼손에 궁채를 오른손엔 열채를 가볍게 쥐고…." 한울림예술단 홍윤기(38) 강사가 양손을 빠르게 놀리며 장구 시범을 보였다. "Amazing(놀라워요)!" 맨 앞줄에 앉은 킴벌리 바르토스(16) 양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졌다.
수강생들은 연방 장구채를 놓치면서도 부지런히 강사의 손놀림을 따라 했다. '덩덩 덩덩 더더덩덩 딱.' 30여분이 지나자, 장구 소리가 제법 들을 만했다. "오후 (탈)춤 수업은 이런 장구 장단에 맞춰 진행된다"는 강사의 말에 수강생들은 더욱 신명을 냈다.
이들은 미국 국무부의 'NSLI-Y'(National Security Language Initiative for Youth) 프로그램을 통해 방한한 미국 고등학생들이다. 미국의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국가에 학생들을 파견해 언어 습득은 물론 다양한 문화 체험까지 하게 하는 프로그램으로, 국무부가 비용을 전액 지원한다. 한국은 올해 인도 등 4개국과 더불어 처음 선정됐다.
4.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 땅을 밟은 이들은 학업 성적은 물론 친화력도 뛰어나고 무엇에는 열성인 팔방미인들이다. 예일대 UCLA 등 명문대에 입학 허가를 받은 학생도 여럿이다. 이 프로그램의 국내 일정을 주관하는 국제학생교류기구의 안혜미 간사는 "학교 성적과 A4 용지 스무 쪽 넘는 에세이 등 서류 심사와 깐깐한 인터뷰를 통과한 학생들로 앞으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할 재목들"이라고 말했다.
오후에는 탈춤 수업이 이어졌다. "낙양동천 이화정~ 얼쑤!" 탈춤 시작을 알리는 고성오광대 전수조교 윤현호(31) 강사의 '불림'이 떨어졌다. 흰색 한삼을 양손에 낀 학생들은 목소리까지 높여가며 탈춤 동작을 익혔다. 양손을 머리 뒤로 넘기는 '고개잡이' 동작에선 힘이 드는지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이어 한쪽 다리로 서는 '다리들기' 동작. 여기저기서 중심을 못 잡고 휘청거리거나 쓰러지는 모습에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보가 터졌다.
지난 6일 방한한 이들은 홈스테이를 하면서 평일 오전 서울대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또 오후와 주말을 이용해 서울 봉은사에서 다도를 배우고, 부여 전통캠프에서 탁본과 토기제작 체험을 하고, 태권도를 배우는 등 한국문화의 숨결을 익혔다. 앞으로 그룹을 짜서 서대문 형무소, 경복궁, 인사동 등에서 '미션 수행'도 한다. 가령 '서대문 형무소 출구와 입구의 높이가 다른 이유 찾기' 식이다. 전통매듭과 떡갈비, 여름만두, 빙수 등 한국음식 만들기에도 도전한다.
"역사 선생님의 권유로" "한류에 빠져서". 이들이 한국행을 택한 까닭은 다양하다. 장구를 배울 때 가장 빠른 손놀림으로 부러움을 산 에반 로(18) 군은 "지난해 태국에 갔다가 우연히 한류를 접하고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특히 좋아하는 빅뱅 비 등 'K-Pop'과는 다른 한국 전통음악을 접하고 또 다른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한인 친구들이 많다는 브룩 스트리터(17) 양은 "졸업 후 한국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 싶어 참가했다"고 말했다. 조셉 워텔러(17) 군은 "한국 친구들이 좋아서" 여러 차례 한국에 다녀갔다.
이번에 처음 고국 땅을 밟은 재미동포 2세들도 있다. 조수현(17)양은 "부모님께 듣고 드라마를 통해 보던 한국을 실제 접하니 낯설면서도 익숙한 묘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9월 예일대에 입학하는 박영(18)군은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양한 한국 문화를 체험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주변 친구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생활 3주차에 접어든 이들은 보고, 듣고, 느끼고 싶은 것들이 아주 많다. 로 군은 "홈스테이를 하는 여의도엔 워싱턴시와 달리 고층 빌딩과 너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아 적응 중이다. 매운 한국 음식을 꼭 입에 넣고야 말겠다"고 했다. 바르토스 양은 "역사 시간에 배운 것보다 한국에는 아름다운 건물도 많고 재미있는 볼거리도 많아 뜻 깊은 추억이 될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참가자 중 20명은 연수 프로그램이 끝나는 8월 말 대학 진학 등을 위해 귀국길에 오른다. 나머지 17명은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동안 한국에 머물며 고등학교나 대안학교에 다닐 예정이다. 이 과정은 미국 학교에서 정식 수학기간으로 인정된다. 9월부터 한 학기 동안 서울 관악구 미림여고에서 공부하는 레이철 겔러(17) 양은 "한국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렌다"?"이런 경험을 살려 대학에서도 한국 관련 전공을 택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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