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의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 대학'(WCU) 사업이 출발부터 삐걱대고 있다. 사업 대상인 13개 대학, 26개 학과ㆍ전공 신입생 모집 결과 대부분의 대학에서 미달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WCU는 교과부가 5년간 8,250억원을 투입하는 대형 국책 사업으로, 전체 예산의 3분의 2를 해외 학자(338명) 유치에 투입한다. 외국 석학 유치를 통해 첨단 분야를 육성하고 대학 수준도 끌어올린다는 것이 사업 목표다. 그러나 화려한 수사와 달리 학생들로부터 외면 당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무엇보다 교과부와 각 대학의 책임이 크다. 교과부는 불과 석 달 만에 사업 공고에서부터 신청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대상 선정 기준인 연구논문 검증 과정에서 부실 심사 논란이 불거졌지만 지원 대학 선정을 강행했다. 대학들이 논문 중복ㆍ이중 게재 등 실적 부풀리기에 열을 올리고, '아랫돌 빼내 윗돌 괴는'식으로 학과ㆍ전공을 급조하는데도 교과부는 정밀 실사를 하지 않았다. 국책사업의 성과를 내려는 교과부의 욕심과 정부 연구자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려는 대학의 욕심이 WCU 사업 부실 출발이라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심각한 것은 학생들이 정부와 대학을 신뢰하지 않는 점이다. 학생들이 WCU 학과ㆍ전공 지원을 꺼린 가장 큰 이유는 "5년 뒤 지원이 끊기면 폐과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여기에 "기존 학과에서 배우는 내용과 대동소이하다"는 생각까지 더해져 미달 사태를 초래했다. 학연이 강하게 작용하는 한국 사회에서 언제 간판을 내릴지 모를 학과와 전공을 선택한다는 것은 모험이다. 기존 학문과 별 차이가 없다면 굳이 생소한 신설 학과나 전공을 택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교과부는 내년 봄학기부터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새로운 학문 분야에 대한 상세한 커리큘럼 소개와 장기적 관점의 미래 비전을 널리 알려 학생들의 성취 욕구를 자극하고 정책에 대한 신뢰를 얻도록 해야 한다. 장학금 혜택 확대 등 학생들을 끌어들일 유인책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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