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직권상정을 통한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파워 정치인'으로서의 위력을 재확인시켰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일정한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나라당이 22일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밀어붙인 데는 박 전 대표의 동의가 절대적이었다. 15일과 19일 잇따라 여야 합의처리와 여론독과점 해소책을 주문할 때만 해도 60여명에 달하는 친박 의원들의 표심은 안갯 속에 있었다. 박 전 대표가 이날 새벽 최종 수정안에 자신의 주장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을 확인하고 OK 사인을 보낸 뒤에야 당 지도부는 직권상정 수순에 돌입할 수 있었다.
박 전 대표는 본회의를 통과한 미디어법에 대해 "이 정도면 국민도 공감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정작 표결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대기업ㆍ신문의 방송 진출에 따른 사전ㆍ사후규제 장치, 여론독과점 해소책 등이 마련됐다고 평가한 것이다. 친이 진영은 △물론, 보수 지지층과 각을 세우는 듯한 상황까지 불사하며 내세운 요구가 수용됐다는 얘기다. 한 친박 의원은 "'방송장악법'이 '박근혜 방송법'으로 변한 것"이라고 농을 건넸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안게 된 부담도 꽤 있어 보인다. 우선 여야 합의처리 노력과 대국민 설득 작업이 충분했는지 여부다. 한나라당은 최종안을 공개한 지 20시간도 지나지 않아 직권상정했고 야당과는 단 한 차례 협상에 나섰을 뿐이다. 그런데도 직권상정에 동의한 것은 결국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여야 합의와 대국민 설득을 강조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박 전 대표의 의중이 반영된 여론독과점 방지책 중 일부의 실효성도 논란거리다. 신문의 방송 진출 요건의 경우 박 전 대표가 구독률 기준을 25%에서 20%로 강화했다지만 조선일보의 구독률이 11% 정도임을 감안하면 실질효과엔 아무 차이가 없다. 수치만 낮췄을 뿐 대책으로서의 기능은 약하다는 얘기다. 여론독과점 방지책이라는 명분만 취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당 지도부의 20일 강행처리에 제동을 건 뒤 친이 측에서 "매번 결정적 순간에 발목을 잡는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던 점도 향후 행보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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