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가 2006년 취임 후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미국측은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에 대해 언급하며 헤즈볼라 비난 발언을 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그는 대신 이스라엘의 공격성을 비난했다. 말리키 총리의 뚝심을 보여주는 일례다.
말리키 총리가 초기의 우려를 딛고, 시아-수니파 갈등, 무장세력 등으로 얼룩졌던 전후 이라크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고 시사주간지 타임, 월스트리스트저널 등 미국 언론들이 21일 보도했다. 말리키 총리는 22일 미국을 방문,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을 갖는다.
2006년 취임 당시만 해도 말리키 총리에 대한 국내외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철군 후에도 이라크에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가하려는 미국의 압력을 물리치고, 국내 종파 갈등의 균형을 맞추면서 이라크 치안을 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타임도 "각 세력 속에서 균형을 맞추며 전후 권력 분배 문제를 해결했다"고 평했다.
그의 가장 큰 성과는 치안 확보다. 아직 취약한 부분이 있지만 현재 이라크 상황은 시아-수니 파 갈등으로 내전 직전 상황까지 갔던 2006년 이래 가장 평온하다. 물론 쿠르드족이 자치를 요구하고 있는 북부 키르쿠크 지역의 긴장 고조 등은 풀어야 할 숙제다.
미군과의 주둔군지위협정(SOFA) 체결에 있어서도 그는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미국은 당초 도시지역에서 철군한 후에도 미 병력이 이라크군의 호위 없이 바그다드 등지를 지날 수 있기를 바랐지만 말리키 총리는 이를 거부했다. 또 전후 권력 분배를 둘러싼 갈등도 원만히 해결했다는 평이다. 특히 자신의 출신파인 시아파 무장세력을 소탕함으로써 자신에게 회의적인 수니파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었다.
말리키는 올해 말 선거를 앞두고 이라크의 이끌 강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로 자신을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시아파 연합의 일원인 셰이크 알사기르는 월스트리트저널에 "그가 이라크 안전은 향상시켰지만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며 "각각 시기에 맞는 지도자가 있는데, 다음 지도자는 경제 복구에 힘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1950년 바그다드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아랍 문학을 전공했다. 학생 시절 당시 집권당인 바트당 반대 운동을 하다 1979년 후세인의 살해 위협 속에 망명했다. 이후 시리아와 이란 등지에 머물며 반 후세인 운동을 펴는 시아파 다와당의 당수로 활약했고 미국의 이라크 공격과 함께 귀국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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