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이 많은 길은 수상하다. 자세히 보라. 간판이 많은 집은 수상하다." 오규원 선생의 시 '간판이 많은 길은 수상하다'의 구절인데, 간판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도로변에 서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 시가 떠오른다. 선생이 이 시를 썼을 1990년의 명동은 그야말로 간판들의 무법천지였다. 가게 입구는 물론 이면도로의 벽에도 허용 규격을 초과했을 대형 간판들이 달려 있었다. 비좁은 골목에 입간판을 내놓아 걸어다니면서 툭툭 발에 채였다.
화가 난 보행자들이 발로 걷어차는 바람에 입간판들은 하나같이 찌그러지고 흙투성이였다. 일단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 상인들은 옆 가게의 간판보다 좀더 큰 간판을 달았다. 그 골목에서 어느 가게가 가장 최근에 생겼는지 간판만 봐도 감이 왔다. 그 무렵의 간판은 도시의 또다른 공해였다. 그 간판 밑으로 우리는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고 들어갔다.
선생이 지금 홍대의 골목을 걷는다면 조금은 조용해진 간판들에 흡족해할 것 같다. 작은 간판에 쓰여진 글자를 보려 사람들이 다가간다. 간판들이 두런두런 속살거리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어른의 명함을 받고 떠오른 것이 바로 이 시였다. 명함에 빽빽하게 협회와 직위가 나열되어 있었다. 간판 많은 집이 떠올랐고 나도 모르게 어떤 분이실까, 수상쩍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소설가 하성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