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지난 7일 반포한 사회회칙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은 오늘날 지구촌이 맞닥뜨리고 있는 정치ㆍ경제ㆍ사회 문제에 대한 교황과 가톨릭교회의 관점을 정리한 것이다.
교황은 21세기 첫 사회회칙인 '진리 안의 사랑'에서 글로벌 경제위기부터 생명공학 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이고 명확한 시각과 주장을 펼쳤다. 6장 79항 144쪽으로 구성된 회칙의 주요 내용과 의미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 박정우(44) 신부와 함께 풀어본다.
- 회칙의 제목 '진리 안의 사랑'의 의미는.
"'사랑'으로 번역된 'Caritas'는 보다 큰 사랑의 개념으로 박애나 자애의 차원까지 확장되는 단어다. 또 '진리'(Veritate)는 교리적으로 윤리적인 삶, 인간의 존엄성 등 보편적인 선에 입각한 가치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진리 안의 사랑'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따라 펼쳐지는 큰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 성서에 '진리 안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전거)가 있는가.
"교황께서 회칙 발표 다음날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라'는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4장15절 말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셨다."
- 21세기 첫 사회회칙에서 '진리 안의 사랑'을 내세운 배경은.
"오늘날 세계의 발전이 인류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진리에서 벗어남으로써 경제위기와 빈부격차, 환경파괴와 인간 존엄성 훼손이 벌어지고 있다는 인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교황께선 '진리 안의 사랑은 인간 발전을 이끄는 추진력이며, 이것만이 경제성장, 사회정의, 공동선에 대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번 사회회칙에서 거론되고 있는 오늘날의 문제는 어떤 것들이고,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나와 있나.
"글로벌 금융위기, 착취당하는 이주노동자, 무분별한 자원개발, 생명공학, 빈부격차, 제3세계 빈곤 등 매우 광범위하다. 이런 문제를 푸는 기본 원칙으로 정의와 공동선을 강조한다."
-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권고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관련해서는 윤리적 토대 회복을 역설하며 이를 위한 범세계적 기구 창설과 유엔에 실질적 지도력을 부여할 수 있는 개혁을 제안했다. 또 부의 재분배와 노동자의 권리 보장, 후진국에 대한 지원 확대 등을 촉구했다."
- 세계화나 자본주의에 대한 회칙의 평가는.
"교황이 세계화와 자본주의를 실패했다고 평가했다는 보도가 일부 있었지만 이는 잘못 전해진 것이다. 회칙은 세계화나 자본주의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함께 평가했다. 다만 자본주의가 인간을 도외시하고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평가는 있다. 그래서 교황께서는 이익추구 일변도의 기업활동 대신 사회적기업 같은 대안의 중요성도 수차례 강조했다."
- 교황이 회칙을 통해 좌파에 힘을 실어줬다는 서구 언론의 평가도 있었는데.
"새삼스러운 얘기다. 특정 파벌에 힘을 실어줬느니 하는 얘기는 좀 그렇고, 사회문제에 대해 교황청에서 회칙을 처음 낸 것이 100년이 넘는데, 늘 가난한 사람 도와야 하고 사회정의를 세우자는 얘기였다. 예수님의 사랑이 원래 그런 거 아닌가."
- 이번 회칙이 국내 가톨릭의 사회적 활동에 미칠 영향은.
"우리나라는 회칙이 지적하고 있는 문제들이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최근 정진석 추기경께서 재개발 지역을 직접 방문해 '재개발 정책은 돈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소수 자본의 편의에 따라 진행되는 재개발도 그렇고 무너지는 노동자의 권리나 생명윤리도 심각하다. 인간의 존엄성 같은 진리를 외면한 국내 상황과 이에 무심한 교회에 대한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 교황 사회회칙이란?
회칙(回勅)이란 전세계 교회에 대해 교황이 발표하는 공식 사목교서이다. 주로 교리적이거나 도덕적, 규율적 문제를 다룬다. 회칙 가운데 당대의 인간과 국가, 공동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안에 대해 교황이 복음에 기초해 그리스도의 교훈을 밝힌 것을 사회회칙이라고 한다. 최초의 사회회칙은 1891년 교황 레오13세가 근대 산업화시기의 문제점을 지적한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이다.
장인철 기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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