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사람들은 점점 강퍅해진다" 해도 반박할 근거가 옹색한 세상이다. 9ㆍ11 테러, 이라크전 등으로 안 그래도 흉흉한데 경제까지 발목을 잡는다. 이런 21세기, "행복은 만유한다"며 세계를 다독이는 학자가 있다.
"행복은 존재의 목적이며 궁극"이라며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행복의 정복> 에서 설파했던 바를 우리 시대의 언어로 치환하는 미 플로리다주립대 대린 맥마흔 석좌교수는 그것도 모자라 "행복이란 인간의 존재 이유"라고 한다. 행복의>
2006년 출간된 맥마흔의 <행복의 역사> 는 사학자로만 알려진 그를 세계가 다시 보도록 만든 책이다. 해박한 역사 지식을 동시대의 감각으로 엮어낸 능력 덕이다. 그가 전거로 들고 인용하는 사실(史實)들은 행복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숨쉬는 생명체로 만들었다. 행복의>
9개 언어로 옮겨진 이 책은 그 해 뉴욕타임스에서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현대인을 행복의 만찬으로 초빙했다. 2년 뒤 국내에서 번역 출간(살림 발행)된 이 책은 행복이란 화두 아래 과연 어느 정도까지의 인문학 서적이 씌어질 수 있느냐에 대한 모범답안이기도 했다.
인류의 전 세대를 아우르는 박물학적 지식과, 그것을 행복이란 키워드로 재구성해내는 탄탄함이 요체다. "사람들이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행복으로서의 종교를 극복하는 것이 바로 사람들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필요했다"는 마르크스부터, 비운의 미학자 발터 벤야민, 독재자 스탈린 등 반자본주의적 인물들의 사상까지도 맥마흔은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개성적인 해석을 도출, 자칫 보수우파적 테두리에 갇힐 수도 있었을 주제를 근원적으로 고찰하게 만든다.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까지 행복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추적한다는 점에서 책의 외피는 일견 행복에 관한 역사서인 듯하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을 넘어 행복에 대한 존재론적, 철학적 고찰을 통해 행복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해 낸다.
역사적 인물들의 어록이나 행적에 집중하거나, 행복해지는 길을 모색한다는 여타 서적과 차별되는 이유다. 맥마흔은 행복을 의식의 산물로 보고, 의식의 진화에 따라 행복도 변해간다는 진화론적 입장까지 수용한다.
그 같은 흐름에서 이 책은 행복론의 준거틀로서 하나의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사회과학이 여러 민족의 주관적 또는 상대적인 행복을 계량화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들이며, 각각의 편차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경향과도 맞물린다. 본디 행복은 관념의 산물이었다.
고대의 행복은 빼어난 미덕이나 예외적인 은혜에 힘입어 평범한 사람들을 뛰어넘은 소수에게만 주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행복한 삶이란 신성의 문제로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와 로마 철학, 유대-기독교적 관념이 축적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계몽시대라고 부르는 17~18세기에 현대의 행복 개념이 '탄생'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현세의 삶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새로운 기대를 처음으로 가진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맥마흔의 책은 행복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전개돼가는 과정을 문학이나 미술 등 예술이 당대 사상과 얽혀 들어가는 양상으로 서술한 문화사이기도 하다.
행복이란 불쾌한 감정과 대비될 때 존재감이 극적으로 커지는 법이다. 공포를 자아내는 일식과 월식, 역병과 기아, 피비린내 나는 전쟁, 이런 세상에서 삶이란 무언가 추구해 나가는 것이라기보다는 견뎌내는 것이었다. 세상이란 잔인하고 예기치 못한 것이며, 우리의 통제 밖에 있는 힘에 의해 지배되었다. 그러므로 진정 그들에게 의미있는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죽음이야말로 인간의 행운과 축복이 더 이상 빼앗길 수 없는 것이 되었음을 확신시켜 주었다. 죽음이 아닌 그 중간 과정에서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는 것은 섣부른 시기상조였고, 착각일 수도 있었다. 신은 변덕스러웠다. 고대 아테네의 갑부 크로이소스는 결국 죽음에 이르러 "살아 있는 자는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라고 외친다.
행복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세속화돼 왔다. 18세기 유럽인들은 영국 저택의 정원, 파리의 팔레 루아얄 같은 공간에 거대한 '오락 정원'을 세웠다. 그저 즐기기 위해 만든, 비효용성으로만 뭉쳐진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재미(fun)'라는 신조어도 그 무렵 만들어졌다. 게임, 레크리에이션, 구경거리, 음식, 음악을 제공하는 오락정원은 현대판 놀이공원의 길을 텄다.
지상에 행복을 위한 장소를 창조하려는 18세기의 열망을 완벽하게 상징한다. 춤추고 노래하고 음식을 즐기며 동반자와 우리의 신체를 마음껏 즐기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에 반항하는 게 아니라 자연이 의도한 대로 사는 것이라며 사람들은 행복감의 정聆纛?확인했다. 나아가 그것이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최선의 목적이라고 인간들은 확대해석하기 시작했다.
행복도 진화한다. 현대 의학은 소극적 치유를 넘어 행복이란 기제를 생물공학적으로 접근한다. 맥마흔은 그 같은 움직임에 대해 "꼭 냉소적일 필요는 없다"는 유보적 입장이다. 저자는 그 박람강기로 행복의 타당성을 증명한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인간의 지적ㆍ경험적 자산이 모두 행복이라는 키워드로 재조합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데 있다.
책의 깊이는 "동물들은 행복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 철학자사상가들의 통찰을 끌어내는 '즐거운 과학' 대목에서 더해진다. 진화론의 아버지 다윈은 "증명하기는 매우 어렵겠지만 내 판단으로는 행복이 확실히 승리한다"며 조심스레 낙관론을 펼쳤다. 그러나 행복을 정복한다는 멋진 가능성에도 불구, 인간의 기분이나 감정을 수리적 기준으로 치환시킬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지혜 없는 행복은 그래서 공허하다.
행복이란 실체 없는 관념이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을 버텨내게 해주는 힘이다. 역사의 동인으로서 행복이란 관념은 이데올로기이면서 환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깨지기 쉬운 그 질그릇에서 분명 뭔가를 길어 마신다. 행복까지도 적극적으로 제조될 수 있다는 21세기의 시각까지, 저자는 행복을 둘러싼 각종 미담과 스캔들을 들춰내며 '행복의 비극'이라고까지 한다.
한 광고인이 만든 스마일 배지가 행복을 굳어진 상징으로 조작했다면, DNA 조작으로 행복까지 제조할 수 있다는 현재는 인간 욕망의 끝을 보여 준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유토피아든 디스토피아든, 행복의 탐닉이라면 못 할 것이란 없"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점에 이 책의 미덕이 있다.
●맥마흔 교수 이메일 인터뷰
맥마흔 교수는 소탈한 성격에다 편안한 이미지를 지녔다. 바로 매체가 찾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LA를 중심으로 교육과 다큐를 다루는 영화ㆍ방송사의 프로그램 제작에도 오래 관련을 맺기도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이메일 인터뷰.
-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현실과 행복의 관계는?
"현대인의 행복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다. 나는 2,000여년의 역사를 대상으로 행복을 연구했지만 행복으로 이르는 길은 못 찾았다. 행복에 목을 매다 보니, 그럴싸한 약속에 홀딱 넘어간 경험을 하고도 인류는 그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스탈린조차도 '행복의 건설자'라고 자처하지 않았나."
- 한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인사다. 물질의 소유는 과연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나?
"쾌락주의란 게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을 옹색하게 한다. 사회적 관계망, 인간으로서 의당 가져야 할 신뢰 등의 가치와 단절시킨다는 의미에서. 사람은 죽기 전까지는 자신이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진정으로 알 수 없는 법이다. 나는 개와 산책하고, 식사에 사람들을 초대하고, 강의하고, 연구ㆍ집필하는 데서 나만의 행복을 찾는다."
- 행복에 관한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는데, 그것만으로도 행복 아닌가?
"너무 열심히 연구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행복에 대해 과도하게 탐구하면, 행복은 자기 손아귀를 벗어나니까."
- 당신이 느끼는 특별한 행복이 있다면?
"'부모 되기란 불행의 길'이라는 말들을 보통 한다. 사실 그렇다. 그런데 성인들이 행복했던 시기를 추적해 보니 다름아닌 어린 자식을 키울 때였다라는 조사 결과는 무엇을 말하나. 아들이 젖먹이 적, 나는 새벽 3시만 되면 깨어나 젖병을 물렸다. 솔직히 힘들었다. 그런데 아이가 10대로 접어들면서 내가 아이로부터 받은 기쁨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커졌고, 내 인생을 살찌웠다. 경제성장률이 아무리 높게 나온다 한들 거기에 비기겠나."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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