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짱 당구소녀' '당구계의 요정' '떠오르는 샛별' 등이 차유람(22)을 표현하는 수식어들이다. 이처럼 차유람은 실력보다는 연예인 못지 않은 예쁘장한 외모 덕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07년 미국 진출 후 기량을 갈고 닦아왔던 차유람은 '소녀' 이미지를 벗고 진정한 '프로'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선수입문 8년차에 접어들면서 성숙미가 완연해진 차유람을 20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 위치한 국가대표팀 훈련장에서 만났다. '포커페이스'와 '연습벌레'로 유명한 그는 "게으르고, 감정이 메말랐다"라는 폭탄 발언을 내뱉을 정도로 솔직하고 거침이 없었다. '소문난 외모'뿐 아니라 내적인 매력까지 느낄 수 있었던 그와의 시원하고 유쾌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 '리틀 라이트닝' 미국 연착륙
차유람은 올해 '대형사고'를 쳤다. 5월 남녀 혼성대회인 세계10볼챔피언십에서 '남자세계 최강자'인 셰인 밴 보닝(미국)에게 드라마틱한 역전승을 거둔 것. 차유람은 대회 예선전에서 '청각장애선수'이자 미국내 최고 인기스타인 보닝에게 4-8로 뒤지고 있다가 10-8로 승리해 팬들을 경악시켰다.
아직도 당시 감동을 간직하고 있는 그는 "그 경기만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 영원히 잊지 못할 경기"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10점째를 얻은 뒤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을 정도로 믿기지 않는 결과였고, 처음으로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미국 현지 신문들은 차유람의 승리 소식을 1면에 싣는 등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여자로는 이례적으로 남자강자들을 차례로 제압한 차유람은 16강에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그는 "대회를 앞두고 한 달 동안 그 선수만 생각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대결을 준비해왔다"며 "보닝은 보통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보청기를 빼는 데 나와의 경기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순간 자존심이 상해서 오기가 생겼고 혼을 실어서 슈팅 하나 하나를 쳐 이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차유람은 '리틀 라이트닝(작은 번개)'이라는 별명이 생겼지만 썩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경쟁자들이 별명을 부를 때마다 "점점 커지고 있다. 곧 '리틀'을 뗄 것"이라며 받아 치고 있다.
■ 포켓볼에 미치고 싶은 '여전사'
매서운 눈빛과 '포커페이스'로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는 차유람은 '여전사'의 이미지가 강하다. 여자경기보다 터프한 성대결을 즐기는 그의 모습에서도 이러한 '도전정신'이 느껴진다.
또 실수를 하면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는 그의 진지한 승부근성에 미국팬들 역시 환호를 보내고 있다. 차유람은 타고난 승부근성과 정신력적인 재능을 승화시키기 위해 '집착'을 떨쳐 내야 했다.
2003년 국내대회 정상에 오르며 일찌감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그동안 승리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했다. 어떤 경기든 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했다"며 "이로 인해 몸이 경직됐고 실수로 연결되는 경향이 잦았다"고 고백했다.
성장이 더뎠던 차유람에게 지난해 5월 세계선수권은 '몸에 좋은 쓴 약'이 됐다. 그는 "당시에도 이미지 때문에 미국 언론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는데 예선 탈락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며 "인기는 많은데 실력은 뒷전인 선수라는 비아냥 때문에 다른 동료들을 보기가 너무나 창피했다.
추락하는 느낌이었다"며 어처구니 없는 결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차유람은 '극기훈련'으로 단점인 체력을 보완하며 실력 향상에 나섰다.
뜨겁고 숨 쉬기 힘든 사우나를 가장 싫어하는 차유람은 "사우나 안에서 이미지 트레이닝 등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집중력을 키웠다. 또 동적인 움직임을 좋아하지 않지만 운동에 필요한 리듬감을 얻기 위해서 하루 2시간의 웨이트 트레이닝과 테니스, 조깅 등을 병행했다"고 말했다.
■'당구계 타이거 우즈'가 꿈
차유람의 롤모델은 의외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다. 우즈를 흠모했던 차유람은 어릴 때부터 우즈에 관한 책을 모조리 다 읽어봤다고. 그는 "수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음에도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도전하는 모습과 눈빛이 맘에 든다"고 설명했다.
'포켓볼 최강자'로 올라서기 위해서 세계선수권대회를 정복하는 게 우선 과제.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승부근성과 정신력은 수준급이기에 실력 향상에만 매진한다면 넘지 못할 산은 아니다.
이장수 포켓볼대표팀 코치는 "다른 선수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정신력과 기술 포용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나머지 부족분을 채우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차유람은 국제무대 경험이 두루 쌓이면서 자신감도 부쩍 붙었다. 그는 "노력하는 만큼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어 큰 힘이 된다. 그리고 나만의 스타일이 자리잡으면서 최근에는 어떤 경기를 펼칠지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라고 자신감을 표현했다.
차유람의 목표는 먼저 오는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세계여자포켓9볼세계선수권에서 정상에 오른 뒤 한국 최초의 여자포켓볼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도전하는 것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비상을 꿈꾸고 있는 차유람은 이번 주말 '전쟁터'인 미국으로 다시 돌아간다.
고양=김두용 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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