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말 안 듣는 아이'로 지칭해 뉴스가 됐다. 그는 그제 인도에서 "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지만, 말 안 듣는 아이(unruly children)의 행동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의 비꼬는 듯한 발언은 북한이 불가역적(irreversible)으로 완전히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과거처럼 당근을 제시하거나 입에 넣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거듭 천명한 것이다. 북한이 먼저 긍정적 신호를 보내야만 화답한다는 의지이다. 2월 첫 아시아 순방 때 "북한은 후계 불안 때문에 강경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꼬집은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를 두고 북한을 자극한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국 외교수장의 발언이 옳은지 그른지 먼저 따지는 것은 순진하다. 냉정하게 보면 어리석다. 그보다는 발언 배경과 의도를 정확히 가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클린턴은 독자 핵 무장으로 오랫동안 국제 제재를 받은 인도를 방문해 '평화적 핵 협력' 당근을 듬뿍 베풀었다. 그런 계제에 북한 핵과 확산 위험을 강력히 경고하는 것은 자기합리화를 겸한 자연스러운 행보로 볼 만하다.
■클린턴이 인도에 머무는 동안, 커트 캠벨 신임 동아시아ㆍ태평양 담당차관보가 서울에 왔다. 그는 언론 등과 두루 만나 대북정책 기조를 설명하면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조치를 하면 '포괄적 패키지'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과 긴밀히 공조해 안보리 제재를 관철하면서도 대화 창구는 열어두는 '투 트랙' 전략을 강조했다. 그러나 알맹이는 "북한이 먼저 변하지 않으면 당근은 없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유화정책을 기대하다 실망한 우리 진보세력과 전문가들은 아직 '반미'는 꺼리는 모습이지만, 미국 외교수뇌의 발언을 어찌 느꼈는지 궁금하다.
■미국은 6자회담에 치중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에 중국의 영향력이 커진 상황을 바꾸기 위해 채찍과 '5자 협의'에 힘을 쏟는다는 분석이 있다. 캠벨 차관보도 상원 청문회에서 중국과의 '큰 게임(big game)'을 강조했다. 이런 시각에서는 북한은 중국과의 전략적 게임에 '유용한 바보(useful idiot)'이고, 따라서 가까운 장래에 북미간 실질적 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비춰 상투적인 '통미봉남' 우려를 앞세워 정부를 욕하는 것은 물정 모르는 짓일 수 있다. 북한이 '말 안 듣는 아이'처럼 행동하는 것은 전략적이든 정서적이든 이유가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넓은 안목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