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습지사업단의 안내를 받아 하루반나절 동안 DMZ(DeMilitarized Zoneㆍ비무장지대) 인근을 누비다 왔다. 엄밀히 말하면 민간인출입통제선 지역. 민통선 검문소에서 철책선까지 이어진 고밀도ㆍ고강도 무장지대로, 군이 허락한 길과 활동의 경계가 엄격한 긴장의 공간이다.
군사분계선이 그어진 1953년 이맘때부터 지금껏 인간이 쉽사리 덥적거릴 수 없는 곳이어서 자연의 생명들이 마음껏 활개치며 살아온, 그래서 어떤 이들은 'The last Galapagos in Earth(지구의 마지막 갈라파고스)'라고도 하는 곳. 우리가 찾은 곳은 임진강 유역을 끼고 있어 습지가 특히 좋다는 서부 민통선 지역이었다.
DMZ는 우리의 영토이면서 유엔사의 배타적 관리영역이다. 전후 유엔과 북한 중국이 서명한 정전협정으로 규정된, 전쟁 억지 공간이고 역설적 평화의 땅이다.
이 협정이 한반도 군사안보의 핵심 규정이라고는 하지만 남북 군 당국에 의해 100만 번도 넘게 조롱 당해왔고, 구역 범위나 중무장 금지 등 상당수 규정은 사실상 구속력을 잃었다지만, 그래도 배제와 차단의 표면적 양식은 살벌하게 지켜지고 있는 진공의 땅이다. 한반도민에게 그리고 인간에게, DMZ는 상징적 삶의 바깥 공간이고 서해 장단반도서부터 동해 고성까지 이어진 700리 철책선의 실질적 바깥이다.
그런 탓에 DMZ의 이미지는 그리 다채롭지 못하다. DMZ는 냉전과 분단, 보다 직접적으로는 전쟁의 엄연한 실재이고 흔적이다. 세월이 가고 세상이 바뀌면서 그 농도는 많이 옅어져, 서울 어딘가에 가면 'Dance Music Zone'이라는 간판을 단 노래방이 있다고도 하지만, 그래도 DMZ는 좌우의 이념 진영 모두에게 '유보된 전쟁'의 그리 미덥지 못한 안전벨트이고, 6ㆍ25가 뭔지 모르는 이도 꽤 된다는 젊은 세대에게도 불편하고 불길한 잿빛 철책의 이미지에 닿아있기 십상이다.
그래서 DMZ는 극복의 대상으로 흔히 지목된다. 감상적ㆍ민족주의적 통일론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연히 하루빨리 지워야 할 상처이고, 개발론자의 입장에서는 'The Last Bonanza in Korea(마지막 남은 노다지)'쯤 될 것이다.
반면 환경ㆍ생태주의자가 바라보는 DMZ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미 공간이다. (그들을 두고 '철딱서니'를 논하는 극우의 논리와 '인간의 개입은 무조건 악(惡)'이라는 등식에 목 메는 환경근본주의들의 논리는 무시하기로 하자.) DMZ생태연구소 전선희 조사부장의 말이다.
"DMZ와 민통선지역은 주요 생물종의 다양성과 서식밀도 등 면에서 매우 우수한 생태 낙원입니다. 금강 낙동강 영산강 등 주요 하천의 하구에 둑이 들어서면서 물의 흐름 자체가 왜곡된 반면 서부민통선지역은 임진강이 한강과 북쪽 예성강을 만나 서해로 이어지는 거대한 기수역(민물과 갯물이 섞이는 곳)을 형성하고 있는데다, 인간의 간섭도 거의 없죠. 그만큼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얘기입니다.
시베리아와 호주를 왕복하는 두루미나 재두루미 독수리 등 국제적 멸종위기 조류의 중간 기착지이고, 노랑부리저어새 등 희귀 조류의 먹이활동 공간이기도 합니다. 습지 식물의 식생은 물론이거니와 금개구리 등 양서ㆍ파충류와 삵 등 포유류가 생태계의 건강한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있는 드문 공간입니다." 그 논리 안의 DMZ는 무한한 생명의 공간이고, 철책선의 운명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적극적으로 지켜가야 할 소중한 가치다.
전 부장의 말처럼 서부 민통선지역의 자연은, 제 발 밑 살피기에도 바쁜 눈으로 봐도 자못 탐스러웠다. 국립공원 철새연구센터 최창용 연구원이 "지구상에 약 1,200여 마리 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이라며 망원경을 들이밀어준 뒤에야 저어새 무리를 찾아 그 자발스러운 부리 젓기를 살필 수 있었고, 동화나 유행가의 가사에나 등장하는 진부한 보통명사쯤으로 여겼던 파랑새가 'Eurystomus Orientalis'라는 학명을 지닌 어엿한 고유명사라는 사실, 그리고 여름 햇살을 등져 더 깊어 보였던 날개 깃의 매혹적인 코발트 빛깔을 볼 수 있었다.
퍼붓는 장대비속에 야산과 논ㆍ밭두렁을 누비며 알게 된 애기마름, 원추리, 한산덩굴, 달맞이꽃따위의 여픔 풀ㆍ꽃들도 좋았고, 그 풀과 꽃들을 새삼 귀한 듯 들여다보던 외국인 참가자들의 다채로운 눈빛의 진지함도 좋았고, 소설가 서영은 선생의 젖은 맨발도 꽃처럼 고왔다.
습지사업단 관계자는 우리가 둘러본 지역을 포함한 DMZ벨트의 몇몇 지점들을 소규모 생태투어 루트로 개발, 민간사업자의 참여를 유도해볼 참이라고 했다.
얼음산이 녹는 것을 살펴보는 빙하투어나 열대 평원의 사파리투어와 같은 스릴과 스펙터클이 없는 작은 자연의 섬세한 생태가, 또 고단하고 불편한 그 누림의 절차와 형식이 얼마나 '사업성'?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시도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탐방객들의 느긋한 이어짐이 팽팽한 철책보다 더 위력적인 평화의 방벽도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사실 DMZ의 생태적 가치에 먼저 주목한 것은 유엔 산하의 국제기구나 국제 민간 환경단체들이었다고 한다. 국제환경NGO인 'DMZ포럼'이 미국 뉴욕에서 출범한 게 1997년이다.
그들은 매년 학술포럼을 개최하면서 DMZ 생태계 보전을 위한 다양한 경로의 외교적 활동을 벌이고 있다. 습지사업단(국가습지보전사업관리단)도 유엔개발계획(UNDP)과 환경부가 협약을 맺고 함께 돈을 대서 2004년 출범시킨, 한반도 습지보전 및 개발정책에 간여하는 준NGO다.
환경부는 문화관광부 등 관계부처와 함께 오는 9월 대규모 국제 DMZ심포지엄등 행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그에 앞서 DMZ에 대한 평화적ㆍ생태적 활용 방안을 마련, 청와대에 보고할 방침이라고 한다. 요컨대 DMZ는 일찌감치 뜨거운 시선 안에 포획된 이슈의 공간이어서 바깥이어도 역설적인 바깥이다.
2007년 만리장성 패션쇼로 세계인의 주목을 끈 바 있는 세계적인 명품 패션 브랜드 '펜디'는 'DMZ 패션쇼'의 가능성을 살피기 위해 현지 조사를 벌인 바 있고, 지난 해 미스월드 한국지사 대표도 한국대회 개최시 피날레 패션쇼의 무대를 DMZ로 할 수 있을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정부 부처들의 DMZ에 대한 이해 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환경부 외에도 문화관광부 건설교통부 행정자치부 통일부 등이 미묘하게 협력하거나 맞서고 있고, 민통선을 끼고 있는 기초ㆍ광역 자치단체들도 이 지역의 활용방안을 놓고 비슷한 목소리를 따로 높이고 있다.
서울과 가까운 서부지역은 서울-평양 축의 중간 거점인데다 개성공단과도 가까워 특히 주목 받는 지역. 부동산으로서의 잠재 가치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개발논리의 공세에 취약하다는 의미다.
이미 남북 교류 물류센터며 출입국관리사무소 등이 들어섰고 2년 전 독수리 월동지 인근에는 개성공단 송전탑들이 줄지어 섰다. 탐사단의 첫 방문지였던 공동경비구역 옆길은 군 당국에 의해 지난 4월 시멘트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신의 영역 바깥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찾기란 불가능하거나 아주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어떤 특정 가치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너무 압도적이라면 왜곡된 사회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생명의 가치가 절대가치의 영역에 아주 가까이 있긴 하지만, 환경과 생태 역시 다른 현실적인 가치들과 최대한 조화해야 한다고 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가령 우리 현실에서 안보ㆍ국방의 논리를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긴 세월동안 각종 규제에 짓눌려온 민통선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과 재산권도 적극적으로 챙겨야 할 소중한 가치이고, 지역 지자체의 빠듯한 계산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ㆍ생태의 가치를 '편파적으로' 부각한 것은, 그 수많은 바깥의 생명들은 제 권리의 중함을 알리기 위해 촛불조차 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습지사업단의 생태투어 구상도 그 생명들의 원군을 모으고자 함일 것이다. 최근 5년간 거의 매주 이 지역 생태계를 조사해왔다는 전 부장은 근년 들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는 서부민통선지역 환경을 크게 걱정했다.
"불과 며칠 전에 이 지역에서 희귀종인 금개구리 서식지 두 곳을 발견했어요. 지금 추세라면 미처 우리 눈에 띄기도 전에 사라질 생명들이 적지 않을 거예요." 생태계 전반을 철저히 조사해 보존할 곳과 개발할 곳을 가르고, 생태계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기 위해 복원할 곳은 복원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DMZ는 다양한 가치와 복잡한 이해관계의 갈등과 대치로 흔들리는 바깥이다. DMZ는 모든 가치가 조화롭게 화해하는 마당, 모든 꿈이 공존하는 'Dream Matching Zone'이 될 수 있을지 여부를 전후의 우리 세대에게 묻고 있었다.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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