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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선교하러 갔다가…해맑음에 정복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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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선교하러 갔다가…해맑음에 정복당하다

입력
2009.07.19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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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에버렛 지음ㆍ윤영삼 옮김/꾸리에 발행ㆍ476쪽ㆍ1만8,000원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아마존의 지류인 마이시강 둔덕에 사는 피다한족에게 이 표현은 "잘 자"라는 뜻의 밤 인사다. 무수한 포식자에 둘러싸인 채 진화한 정글의 언어는 문명의 안온함에 익숙해진 인간에게 무척 낯설다. 이 이질감은 때론 동경으로, 때론 혐오감으로 언어중추 속으로 퍼진다. 이 책은 그 '낯섬' 속에서 30년 세월을 보낸 학자가 언어의 본질에 대해, 그리고 인간에 대해 성찰한 기록이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언어ㆍ문학ㆍ문화학과 학장인 저자 다니엘 에버렛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는 연구를 위해 아마존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1977년 6인승 비행기를 타고 처음 밀림에 발을 내디뎠을 때, 저자는 '복음을 전파한다'는 사명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젊은 선교사는 곧 벽에 부딪혔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은 무의미하다는 피다한족의 삶의 태도, 저자가 '경험 직접성의 원칙'이라 이름 붙인 것이 첫번째 벽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창조와 구원의 개념은 코미디였다.

더 큰 문제는 저자의 내면에서 일어났다. "나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피다한 사람들의 고매한 인성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들에 대한 존경심이 커져갔다. 이들에게는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피다한 사람들은 언제나 주체적으로 살았다." 저자는 열린 사람이었다. "이들을 흔들려고 온 내가, 오히려 이들의 삶과 대면함으로써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과감히 기독교를 버리고, 이들의 문화와 언어를 본격적으로 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책의 전반부는 저자가 피다한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며 접한 '다른' 문화와 언어의 풍경이다. 예컨대 문자에 대한 관념. "이들은 종이에 똑 같은 기호(동그라미)를 그리기만 했다. 그렇게 쓴 '글'을 보면서 그날 겪은 일이나 아픈 사람에 대해 얘기했다… 이러한 과정을 하나의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할 뿐, 어떤 '올바른' 방식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인위적인 규칙은 너무나 생소한 개념이었다."

후반부는 언어학 서적에 가깝다. 피다한을 비롯한 아마존 일대의 언어를 피부로 접하면서, 그는 촘스키를 비롯한 현대 언어학자들의 이론이 잘못된 토대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저자는 '보편 문법'을 강조하는 형식주의 언어학의 맹점을 경험적 사례들로 통박한다. "언어의 작동방식(문법)보다 문화에 기초한 의미와 문화마다 다양하게 작동하는 제약이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류학과 현장연구에서 벗어난 언어학은 실험실을 부정하는 화학과 같다." 논지가 정글에서의 체험에 뿌리내리고 있어서, 저자의 언어학은 결코 따분하지 않다.

아마존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30년 간의 탐구는 인간에 대한 통찰로 남았다. 저자는 피다한 사람들의 삶이 기독교와 합리주의에 물든 서양인들에게 "전혀 새로운 시선을 열어줄 수 있는 텍스트"라고 말한다. "우리 자신을 지나치게 위대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진화한 원숭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절대자, 성스러움, 죄악, 소유 같은 개념이 없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상상하지 못한다. 피다한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삶, 그러한 사회를 보여준다. 참으로 매력적인 비전이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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