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장마의 귀환'이다. 하지만 이번엔 더 세졌다. 근년 들어 장마 같지 않은 장마로 예전의 명성을 잃어버리는가 싶더니 올해는 말 그대로 '물폭탄'을 터뜨리듯 비를 쏟아 붓고 있다.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닌 건 비의 양 뿐 아니다. 공격 방식 역시 과거와 사뭇 다르다. 한 곳만 집중적으로 패는 물폭탄식 공격은 과거 게릴라성 집중호우의 특징이지만, 올해 물폭탄은 '정규군과 게릴라가 혼합된 융단폭격' 수준으로 격상된 양상이다.
17일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장마의 특징 중 하나는 뚜렷한 장마전선을 형성하는 정통 장마의 모습을 띤다는 점이다. 장마전선이 동서로 길게 형성돼 한반도 상공을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 김승배 기상청 통보관은 "오랜만에 많은 비를 동반한 장마다운 장마"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형적인 장마를 넘어서는 측면이 적지 않다. 시민들이 올해 장마에 혀를 내두르고 있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우선 호우의 강도가 예사롭지 않다. 기상청에 따르면 1971년부터 2000년까지 평년 장마기간(6월 하순부터 32일 가량) 중 강수량은 중부지방이 238~398㎜, 남부가 199~443㎜ 정도다.
그런데 올해의 경우 6월 20일부터 이달 16일까지 서울의 누적 강수량이 벌써 636㎜에 달하고 있다. 같은 기간 강수량으로 해방 이후 최대 기록이다. 1908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1940년(989.2㎜), 1930년(731.6㎜)에 이어 세 번째다. 7일 부산에 하루 310㎜가 내려 관측 시작 이후 7월 하루 최다 강수량을 기록하는 등 지역별로도 각종 기록이 양산되고 있다.
하루는 물폭탄이 떨어지고, 하루는 쨍쨍한 날씨가 반복되는 징검다리식 호우도 이번 장마의 특징이다. 통상 장마전선이 뚜렷하게 형성되면 남북을 오르내리며 지루하게 비를 뿌리는 것과 대비된다. 게다가 고개 하나만 넘어도 비가 사라질 정도로 초국지성 호우 형태까지 보인다. 2일 서울의 평균 강수량은 96.5㎜였지만, 강서구는 120㎜, 강북구는 7.5㎜로 16배 차이가 났다. 이 때문에 열대지방 스콜의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년의 게릴라성(국지성) 집중호우로 보기도 어렵다. 게릴라성 집중호우는 예측이 어려운 소규모 비구름이 좁은 지역 상공에 갑작스럽게 형성돼 폭우를 쏟아붓는 형태다. 반면 올해는 뚜렷한 장마전선의 이동에 따라 호우 시그널이 사전에 명확히 드러날 정도로 기계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올해 기상청의 호우 예보가 비교적 정확하게 맞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마전선이 과거에 비해 빠른 속도로 아래 위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도 특징적이다. 정규군이 게릴라전 속도로 이동하며 지역별로 정밀타격식 융단폭격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기상청은 올해 국지성 폭우의 원인으로 연료 역할을 하는 수증기가 대량으로 꾸준히 공급되고 있는 영향을 들고 있다. 뚜렷한 장마전선에 중국발 저기압이 유독 자주 유입돼 결합하면서 많은 비를 뿌린다는 설명이다.
한번 폭우를 쏟아도 며칠 만에 다시 수증기를 잔뜩 머금게 돼 시간이 흘러도 장마전선의 힘이 줄지 않는 것이다. 보통은 장마 초기 집중호우가 내릴 수 있지만 점차 강수량이 줄게 마련이다. 또 서태평양 대류활동이 약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부근의 대류활동이 강해진 것도 장마전선을 활성화한 원인으로 꼽힌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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