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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루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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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루왁

입력
2009.07.1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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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보는 버킷 리스트. 동명의 영화에서 사업가인 에드워드는 이 리스트를 작성하려 하지만 막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평생 돈벌이가 되는 일만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기껏 떠오른 것은 최고급 커피인 '루왁'을 마시는 것. 이 루왁 커피는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도 언급된다. 너무도 귀해 매번 마시지는 못하고 대신 평범한 커피에 주문을 건다.

커피 가루 속에 검지손가락을 살짝 찔러넣고 "루왁"이라고 소곤거리는데 신기하게도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이 원두를 바꿨냐고 물어온다. 양동이로 들이붓듯 비가 쏟아지던 날, 루왁 커피를 판다는 작은 카페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차마 루왁 커피 맛은 못 보고 대신 커피의 재료라는 사향고양이의 배설물만 구경했다. 긴꼬리사향고양이는 한 철 붉게 열린 커피 열매만 따먹으며 지낸다.

겉껍질과 과육은 전부 소화되고 커피 알갱이들만 배설물로 나온다. 바로 그 커피의 속껍질을 벗기고 씻어 만드는 것이 루왁 커피이다. 서울의 한 호텔에서는 4만원을, 강남의 어느 곳에서는 9만원까지 호가한다는 루왁 커피. 알갱이, 알갱이로만 된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자니 사향고양이의 너무도 힘들었을 배설 시간이 떠오른다. 요즘 배변 훈련을 하며 아기 변기에 올라앉아 묘한 표정을 짓는 둘째도 떠오른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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