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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절 아침, 국회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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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절 아침, 국회가 부끄럽다

입력
2009.07.1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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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18대 국회가 부끄러운 기록들을 계속 만들어내더니 이번엔 본회의장 여야 동시 점거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였다. 정치 원로들은 "국회가 대화와 타협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탄식했다.

18대 국회 들어 낯 뜨거운 작태는 한 두 번이 아니다. 출발부터 그랬다. 국회법상 의원 임기 시작 후 7일에 국회가 개원해야 하지만 여야 기싸움으로 무려 82일이나 지나서야 겨우 문을 열었다. 지난해 12월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상정을 둘러싸고 해머와 전기톱, 소방호스까지 등장하는 육탄전이 벌어졌다. 회의장 문과 집기가 부서지고 소화기 분말이 난무했다. 이 장면은 주요 외신에 생생하게 보도돼 세계적 웃음거리가 됐다.

지난달 23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한인회장 대회에 참석한 65개국 369명의 한인회 전ㆍ현직 간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258명중 41%인 117명이 가장 창피한 고국의 일로 '국회 난장판'을 꼽았다.

지금 벌어지는 본회의장 여야 동시 점거는 부끄러운 기록의 결정판이다. 미디어법과 비정규직법을 놓고 한치 양보 없는 치킨게임만 하더니 또 한번 세계적 비웃음거리를 만들어낸 셈이다. 6월 국회 내내 법안은 한건도 처리하지 못했다.

여야 점거 농성 이틀째이자 제61주년 제헌절을 하루 앞둔 16일 여야 3당 원내대표는 김형오 국회의장 주재로 만났지만 역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녹여내 대안을 찾아내는 용광로 역할을 해야 할 국회가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코미디 국회, 식물 국회, 무능 국회, 뇌사 국회, 금치산 국회라는 온갖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과거에도 야당이 극렬 투쟁하면서 의장 단상을 점거한 일이 있지만 여야가 동시에 본회의장을 점거한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부끄럽지도 않느냐. 여야 모두 당장 농성을 풀라"고 일갈했다. 정치권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은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되는 일이 없도록 여야 모두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정치권이 공멸을 피하려면 대화와 타협의 정치력을 복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여당이 먼저 정치력을 보여줘야 하며, 야당은 실현 가능한 대안을 내놓고 타협할 생각을 해야 한다"며 "이대로 가다간 국민의 피로감과 불신만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지금은 국회가 대의기관이라는 기본마저 상실하고 국민을 경시하고 있는 지경"이라며 "정치권은 타협이라는 의회민주주의 기본정신을 회복하고 시민사회와 언론은 의회 감시기능을 한층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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