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국회의장이 17일 제헌절 축사를 통해 '내년 6월 지방선거 전 개헌 필요성'을 제기하게 되면 정치권 개헌 논의는 공론화 과정에 들어선다. 김 의장이 적잖은 준비 끝에 개헌 시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한 것은 지방선거 이후 대선주자가 부각되면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 개헌은 물 건너 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9월 정기국회에서의 개헌특위구성, 늦어도 내년 1, 2월 중 개헌안 발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김 의장의 구상이다. 발의 후 국회표결과 국민투표 실시까지 최장 4개월 정도가 걸리기 때문이다.
조기개헌 현실화 가능성과 관련해선 여야를 막론하고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원들이 과반을 훨씬 넘는 만큼 기본동력은 있다고 볼 수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대통령 권력분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다문화 사회에서의 기본권 조항 강화 등 시대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여론도 강하기 때문에 개헌 공감대는 더 확산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개헌 논의 조기 착수에 대한 민주당의 반대와 권력구조 등 구체적 개헌 내용을 둘러싼 여야 정파 간 동상이몽은 개헌 전망을 상당히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일부 이견에도 불구, 개헌 논의는 지방선거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입장이어서 김 의장 구상과는 양립할 수 없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이 착수 시기를 늦춰 잡고 있는 것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의 여야 대립구도와 민주당에 유리해진 일부 환경을 유지한 채 지방선거를 치르겠다는 뜻이다.
여기엔 여권의 조기개헌 추진이 국면전환용이라는 의구심도 깔려 있다. 민주당의 경우는 2011년 개헌이 목표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16일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지방선거 이후 개헌 논의 착수를 사실상 당론으로 쐐기를 박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상황은 더욱 부정적이다. 이 경우 여야 합의가 전제돼야 할 9월 국회 내 개헌특위구성은 불가능해진다.
한나라당 등 여권 내에도 복병은 많다. 우선 차기 대통령에 가장 근접해 있는 박근혜 전 대표가 '4년 중임 대통령제'에 대한 지지를 밝혔을 뿐 시기나 일정과 관련해 함구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15일 "개헌은 다른 시급한 국정현안과 함께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해 개헌의 시급성에 대해 매우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친박계 내에는 개헌론이 친이계의 박 전 대표 견제용이라는 시각도 많다. 더욱이 박 전 대표가 이원집정부제 등 분권형 대통령제에 부정적 시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것도 여권 내 갈등 유발 요소다.
권력누수 우려에도 불구, 이명박 대통령이 개헌에 적극성을 보일 경우엔 가능성이 반반이다. 개헌론에 탄력이 붙을 수도 있고 오히려 야당과 친박계의 반발을 부를 수도 있다.
다만 국회 내 개헌연구를 주도해온 미래한국헌법연구회의 공동대표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 민주당 이낙연 의원,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 등이 조기 개헌론자여서 이들이 어떤 힘을 발휘할지가 주목된다.
고태성 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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