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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여행은 '길 위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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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여행은 '길 위의 독서'

입력
2009.07.16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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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에서 며칠 만에 초밥을 먹었다. 캐나다 내륙을 여행하면서 늘 점심을 햄버거로 때우는 터라, 가족들 모두가 반기며 코스트코 매장에 전시된 스시에 달려든다. 주린 배를 꼭 참으며, 싸구려 모텔에 들어서서 이제나 저제나 며칠 만에 먹을 쌀로 된 음식, 스시를 한 입 베어 문다.

미국의 가판대에서 처음 산 초밥은 <미스터 초밥왕> 의 초밥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밥알 한 알 한 알이 느껴지는 특별한 맛인데, 왜냐하면 밥알 한 알 한 알이 모두 설 익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달다. 식초는 다 증발하고 설탕에만 저린 것 같은 단맛. 그 단 것을 다시 '스윗 소스'라고 붙인 특별한 소스에 찍어 먹으란다.

간신히 하나 남은 라면을 전자 렌지에 돌려 먹는다. 가족 모두들 면발만 쳐다본다. 군대에서 먹는 라면이 이런 맛이라며 남편이 입맛을 다신다. 아이들로서는 전주에 갔을 때 오줌 냄새가 나는 삭힌 고기(삼합)를 먹어 봤을 때처럼 충격적인 표정이다.

문화적 충격. 부모로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 여행을 할 때 가장 좋은 점은 아이들이 자신 앞에 놓인 문화적 충격을 아이들이 흡수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사고의 범위를 재확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리라. 그것은 비단 해외 여행뿐 아니라 국내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생각보다 아이들에게 문화적 충격은 멋진 볼거리나 놀이공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먹거리와 마주치는 사람들에게서 오는 것 같다. 우리 애들은 여기 미국에서는 햄버거 가게에서 종업원들이 정말 느리게 일을 한다며, 저래도 되는 거냐며 새삼 재삼 반문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세상이 정말 다르다는 것을. 지형과 기후가 달라지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삶이 달라지고 이윽고 시간과 감각조차도 달라진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싸구려 모텔을 찾아 다니며, 대중 교통을 이동하고, 사람들과 부딪히는 고된 여행이란 아이들에게는 세상을 읽어 내는 또 다른 '길 위의 독서' 같은 것이리라.

상담가로서 나는 청소년 문제를 상담하러 온 부모들에게"아이들과 얼마나 자주 여행을 다니느냐"고 물어 본다. 그러면 상당수의 부모가 '자주' 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 '자주'라는 대답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정해진 틀 내에서 움직이는 '관광'(여행의 관점에서 보면 관광 버스는 거대한 움직이는 관이다)이거나 무언가를 사러 다니는 '소비'행위인 경우가 십중팔구이다.

사실 이러한 문화적 충격의 과정은 아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결혼 8년 차가 되어 비로소 서로에게 새로운 커플링을 선물하기로 결정한 우리 부부는(사실 우리는 원피스와 양복을 입고 결혼을 했으니 결혼 반지는 어떤 것이었을지 상상해 보시라) 반지 가게에 들러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혼 반지가 아닌 이상, 커플링이라는 단어가 캐나다에는 없다는 것(매칭 링이라고 해야 한단다). 종업원은 결혼한 지 10년이 다 돼가는데 왜 부부가 똑 같은 반지를 끼느냐고 오히려 내게 반문한다.

이곳 캐나다에서 매칭 링은 아주 똑 같은 모양이 아니어도 잘 어울리는 반지 두 개를 의미한다. 초등학교 우리 아들도 끼는 커플링. 그런데 부부가 꼭 똑 같은 반지를 낄 필요는 없다? 에헴. 여행의 가장 큰 자산은 생각을 넓히는 것. 그런데 여전히 나는 슬금슬금 이빨로 깨물어서 진짜 금을 확인할 수 있는 커플링 하나 끼어 보고 싶다.

심영섭 영화평론가ㆍ대구사이버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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