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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바리캉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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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바리캉의 역사

입력
2009.07.15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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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나갔다가 집회 현장을 지나쳤다. 무슨 집회일까, 둘러보았지만 웅성대는 사람들에 가려 현수막도 잘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전자카드라는 단어만 알아보았는데 어떤 집회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잠시 구호가 멈춘 시간, 붉은 조끼 차림의 남자들은 이탈해서 약국에도 들르고 길가에 서서 담배도 피웠다. 강단 위에 선 남자는 준비해온 떡으로 잠깐 요기라도 하며 쉬시라고 모인 사람들을 다독였다.

발목이 덮일 만큼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은 나중에야 눈에 들어왔다. 여러 명의 삭발식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머리카락을 밀면서 최고조로 격앙되었던 만큼 탈진한 사람들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 것이었다가 아닌 게 되는 순간, 머리카락처럼 이물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짧고 색이 바랜, 곳곳에 흰 머리카락도 섞인, 부석부석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풀풀 날릴 것 같은 머리카락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의미심장함을 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두발 검사에 걸려 바리캉으로 목덜미 부근의 머리카락을 밀리던 일에서부터 공부에 매진하겠다며 눈썹까지 다 밀었던 맨송맨송하던 사촌 얼굴도 떠오르고 얼마 전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던 총학생회장도 생각났다. 긴 머리카락이 밀리는 동안 그 여학생은 울었다. 눈화장이 지워져 검은 눈물이 흘렀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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