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리빨리 버리고 만만디 전략… '중국의 SK' 새겼다
"30년의 긴 안목으로 접근하라. 단기간의 성과에 조바심 내지 말고 중장기적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최태원 SK 회장)
중국 시장을 겨냥한 SK그룹의 접근 방법이다. SK그룹은 중국 시장을 보는 안목이 다르다. 외부에서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중국 기업이 돼서 내부에서 시장을 넓혀야 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SK에서는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으로 부른다.
● '차이나 인사이더', 중국 기업이 돼라
차이나 인사이더란 쉽게 말해 중국 기업화하는 것이다. 최 회장은 "중국 시장에서 SK의 모습이 한국과 똑 같을 필요는 없다"며 "똑 같은 사업을 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버리라"고 주문했다.
즉, 한국에서 하는 에너지, 정보통신(IT) 사업 모델을 중국에서 그대로 고집하면 언제 풀릴지 모르는 중국의 인ㆍ허가에 얽매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과는 다른 사업 역량 개발이 필요하다는 게 SK의 판단이다.
SK그룹이 중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성장 잠재성과 시장 규모가 단일 시장으론 가장 크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동통신 가입자만 한국의 10배 이상인 5억명이 넘는다. 매달 늘어나는 신규 가입자만 700만명이 넘는 더할 수 없이 매력적인 시장이다.
SK그룹의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은 1991년 중국 진출과 동시에 기초가 닦였다. 2001년에는 링컨 대통령의 명언을 인용해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중국의 SK'라는 'By the China, For the China, Of the China'라는 명제를 세웠다.
여기 맞춰 중국 사업을 하는 SK 계열사들은 중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이 아닌 중국 기업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전략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실패를 자산으로 삼겠다는 것이 최 회장의 각오다. 그는 "제대로 된 일을 한다는 소신이 들면 난관에 부딪쳐도 주위를 계속 설득하라"며 "실패해도 성과를 인정하겠다"고 강조했다.
● 기존 사업에 얽매이지 마라
차이나 인사이더의 대표적 사례가 SK에너지다. SK에너지는 주 종목인 정유와 화학을 고집하지 않고 1990년대 중반부터 아스팔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중국 경제가 성장할수록 자동차가 늘어날 수 밖에 없어 도로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SK에너지의 아스팔트 사업은 적중했고, 내년이면 1,000만톤의 누적 수출이 가능할 전망이다. SK에너지가 그간 중국에 수출한 아스팔트는 4차선 도로를 만들면 무려 12만㎞로 지구를 3바퀴나 돌 수 있는 분량이다.
SK에너지는 지난해 5월 아시아 기업으론 최초로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중국 최대 에너지기업 시노펙이 추진 중인 연간 생산량 80만톤 규모의 에틸렌 생산공장 합작사업에 참여했다. 해외 메이저 업체들이 주로 도맡았던 에틸렌 사업 진출을 위해 수년 동안 공을 들인 결과였다.
SK텔레콤과 SK건설, SK C&C도 지난해 5월 중국 베이징에서 국제 디지털문화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2013년까지 10억달러가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들이 각 사의 다양한 사업을 연결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게 SK그룹의 장점이다. SK텔레콤의 통신 기술, SK건설의 시공 능력, SK C&C의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을 결집해 수년 전부터 유비쿼터스 도시 사업을 추진해 온 것이 베이징 디지털문화산업단지 조성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SK텔레콤도 이동통신 사업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융합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해 1999년 6월 중국 제2 이동통신업체인 차이나유니콤과 처음 만났고, 2002년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위한 합작 벤처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그 결과물이 2004년 탄생한 유니SK다. 유니SK는 단순 콘텐츠 제공이 아닌 무선인터넷 분야에서 공동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합작업체다. 해외 이동통신업체가 중국 이동통신업체와 합작사를 설립해 중국 통신시장에 진출한 사례로는 처음이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차이나유니콤 지분 3.8%를 확보, 중국 시장에서 유ㆍ무선 통신서비스를 모두 아우르는 사업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SK텔레콤은 또 위치정보업체인 E-아이까오신사를 인수해 텔레매틱스 사업 기반을 마련했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위한 TR뮤직사 지분도 확보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중국과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업체들과 협력해 중국 내 서비스는 물론이고 아시아 시장에서 관련 사업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SK그룹은 중국을 장기적인 동반자로 보고 중국 진출을 더욱 확대할 방침이다. 권오용 SK 브랜드관리부문장(부사장)은 "중국과 진정한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야만 중국과 SK그룹 모두 윈윈 할 수 있다"며 "이런 차원에서 SK그룹이 중국에서 한국 기업이 아닌 중국 기업으로 자리잡는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중국 사업의 성공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 순즈창 중국SK 부사장
"한국과 중국은 하나의 내수 시장이다. 한국만큼 중국을 잘 이해하는 국가는 없다. 중국을 경쟁자가 아닌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로 보고 좀더 세밀한 파트너십을 가져야 한다. SK는 1988년 중국에 처음 진출한 이후 중국을 한국과 같은 하나의 시장으로 보고 '차이나 인사이더'라는 철저한 현지화 경영전략을 펴고 있다."
순즈창(孫子强ㆍ45) 중국SK 부사장은 13일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내수 소비는 여전히 두 자릿수의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경제위기를 이겨내려면 중국 내수시장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이해와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한 SK만의 독특한 중국사업 전략이 바로 '차이나 인사이더'다. 그는 "중국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 살아 남으려면 단순한 현지화 차원을 뛰어넘어 철저하게 중국기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순 부사장은"SK는 눈앞의 성과보다는 30년 이상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중국 사업을 하고 있다"며 "중국 내 장기투자는 SK의 전략임과 동시에 신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중국 사업은 어느 한 구간만 빨리 달린다고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전 구간을 지속적으로 같은 속력으로 달리는 것이 더 중요한 마라톤과 같다"고 설명했다.
SK의 중국 내수시장 공략은 크게 에너지와 통신, 서비스 분야에서 중국인과 호흡을 같이 하며'천천히 걷기'를 하고 있다. 웬만한 인내와 이해 없이는 이루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SK는 이미 에너지 분야의 아스팔트, 에틸렌, 윤활유 사업을 중심으로 내수 중간재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또 통신 분야의 무선인터넷과 모바일컨텐츠 서비스 분야의 쇼핑몰ㆍ유통 사업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순 부사장은 "최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친환경 사업 분야에서도 많은 기회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SK그룹이 개발 중인 무공해 석탄에너지나 그린카, 태양전지, 첨단 그린 도시(u-Eco City) 등 녹색 에너지 사업들이 향후 중국시장에서 먹거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첨단 그린 도시는 SK 계열사들이 보유한 친환경 에너지 및 정보통신 기술을 결집시켜 '따로 또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순 부사장은 "중국시장에서 스피드, 유연성, 실행력 등 3박자를 갖춘다면 위기 속에서도 도약과 성장을 위한 기회를 만들 수 있다"며 "SK그룹은 중국에서 강한 생존능력과 성장성을 지닌 중국기업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베이징=장학만 특파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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