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충북 보은 속리중 최재임 교사, 공부방 열어 열정 쏟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충북 보은 속리중 최재임 교사, 공부방 열어 열정 쏟다

입력
2009.07.14 05:12
0 0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중학교 수학교사 최재임(47)씨는 방과 후가 더 바쁘다. 그는 학교를 마치면 도시락 등으로 얼른 저녁을 때운 뒤 사내리복지회관으로 향한다. 회관 2층에 마련한 공부방에서 '과외'를 하기 위해서다. 방과 후 수업은 매일 오후 6시20분부터 9시까지 이어진다. 지난해 9월 공부방을 연 후 평일이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일과다.

"소금물 농도 구하는 게 자꾸 헷갈려요." "연립부등식에서 수직선을 그려 답을 찾을 수 있나요?"

9일 오후 7시께 '사내리 청소년 배움터'란 문패가 걸린 공부방 문틈으로 아이들의 질문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날 끝난 2학년 수학 기말고사 문제를 풀어보는 시간이었다. 문제풀이를 마친 최 교사가 손뼉을 치며 아이들의 시선을 모았다.

"시험 공부하느라 모두들 고생 많았다. 자, 이번에는 머리도 식힐 겸 재미있는 모형놀이를 해볼까?" 아이들이 일제히 "와"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최 교사가 책상 위에 '스메듀'라는 창의력 과학교구를 한 무더기 올려놓았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요리조리 교구를 맞춰가며 입체 도형, 동물, 자동차 등 갖가지 모양을 만들어 나갔다. 박지은(14ㆍ2년)양은 "방과 후에 하는 수학 공부가 재미있고 흥미로워 전교생 24명 중 22명이 공부방에 매일 나온다"고 전했다.

최 교사가 야간 공부방을 연 사연은 이렇다. 지난해 2월 속리중에 부임한 그는 재작년 충북도교육청이 실시한 학력평가에서 전교생 수학 평균 점수가 30점대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실제 가르쳐 보니 상황이 심각했다. "학원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산골 아이들이라 기초 학력이 상당히 처질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앞이 캄캄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면 할 수 있는 통분, 약분을 못하는 아이들이 60%가 넘었어요."

아이들의 기초 실력을 다지는 게 급선무였다. 정규 수업시간에는 진도를 나가야 해 방과 후 보충학습이 필요했다. "아이들을 곁에서 끼고 가르치려면 이사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청주 집에서 20여년 모시고 산 시부모님 설득에 나섰다. 시부모님도, 함께 교편을 잡고 있는 남편(48)도 흔쾌히 그의 뜻을 따라주었다. 마침 고교생 딸이 성적우수자로 기숙사에 들어가 부담을 덜었다.

지난해 3월 남편과 함께 학교 근처인 속리산면 북암리로 거처를 옮긴 그는 곧바로 야간 보충수업에 들어갔다. 교무실에 밥솥까지 갖다 놓고 아이들에게 밥을 해 먹여가며 개인 지도를 했다. 그러나 학교가 사내리 마을에서 2㎞나 떨어진 속리산 기슭에 자리해 야간 학습을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공부를 마치고 밤늦게 귀가하는 길이 무섭고 위험했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공부방 자리를 물색하던 그는 노후한 사내리복지회관이 오랫동안 텅 빈 채 방치된 것을 확인, 면사무소를 찾았다. 면사무소는 군청으로부터 4,000만원을 지원 받아 작은 교실 3개와 체력단련실을 갖춘 어엿한 공부방을 차려 주었다.

공부방 수업은 초등 5, 6학년 과정부터 시작했다. 기초를 확실히 다지기 위해서다. 창의력 학습도구를 이용해 아이들의 수학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학습법도 병행했다. 공부하는 법을 몰랐던 아이들은 서서히 자신감을 갖게 됐고, 실력도 일취월장 했다.

지난 겨울방학 꼬박 공부방에서 학업에 매진한 아이들의 수학 점수는 평균 70~80점대로 껑충 뛰었다. 지난달 중순 치러진 보은군민장학회 선발시험에서 속리중은 보은군내 7개 중학교 가운데 국ㆍ영ㆍ수 평균 점수 1등을 차지했다. 2학년 박종범(14)군은 만점을 기록했다.

아이들의 변화에 감동한 동료 교사들도 공부방 운영을 적극 돕고 있다. 교무부장인 이강준(52) 교사가 사내리로 이사해 한문 과목을 가르치고 있고, 다른 교사들도 야간 보충수업을 자청해 이번 학기부터는 국어, 영어 과목도 운영 중이다. 요즘은 4명의 교사가 2명씩 돌아가면서 수업은 물론 생활지도까지 맡고 있다.

공부방 소문이 퍼지면서 올해 속리중에는 경사가 생겼다. 학기 중에 학생 4명이 타지에서 전학을 온 것이다. 그동안 도시로 빠져나가기만 했지, 속리산으로 들어오는 학생은 없었다.

최동섭 교장은 "속리산 관광 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든 1990년대부터 학생수가 격감해온 추세를 감안할 때 분명 반가운 일"이라며 "다른 지역 학부모들로부터 우리 학교 공부방 운영에 대한 문의 전화가 심심치 않게 걸려 온다"고 했다. 속리중은 올 여름방학에 대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공부방에서 미술과 영어회화 캠프 등도 운영할 계획이다.

최 교사는 "아이들은 가까이서 정성을 쏟고 보살피면 금세 달라진다"며 "속리산 아이들이 더 이상 보은읍내나 청주로 나가지 않도록 속리중을 최고 실력을 갖춘 학교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속리산=한덕동 기자 dd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