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세기 이전에는 과학이 소수의 엘리트 또는 전문가들의 지적 관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고, 인문학과의 소통과 상호작용도 활발했다. 중세와 근세를 보아도 물리학이나 수학의 진보가 당대의 철학자들에 의해 논의되고 그 흐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현대로 오면서 이러한 소통은 오히려 감소된 것으로 보인다. 과학이 급격한 발전과 함께 세분화되고, 훈련된 과학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과학적 언어와 기호가 사용되면서, 인문학자들이 현대 과학의 주요 결과들을 신속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탓이다.
반면에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삶의 양식을 바꾸는 데 기여하는 정도는 더 확대되었다. 컴퓨터나 유ㆍ무선 통신의 등장은 생활의 편리 수준을 훨씬 뛰어 넘어, 사람들이 생각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바꾸어 버렸지 않았는가?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서 특히 추상적이고 사변적 성향이 강했던 수학도 이제는 대중문화 발전의 한가운데로 들어와 있다. 1,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냉전시대가 이어지면서, 폰 노이만이나 투링같은 수학자들이 과학기술의 진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탓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현대수학은 과학기술의 발전, 더 크게는 문명의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더욱 크다. 정보화시대의 도래와 관련한 예를 들어보자. 인터넷시대가 열리고 다량의 정보가 제한된 통신채널에서 교류되면서 여러 수학적 문제가 나타난다.
음성정보 뿐만 아니라 정지영상과 동영상 등의 멀티미디어 정보가 중요해지면서 큰 용량의 정보를 신속히 전달하기 위한 신호압축이 필수적이다. 컴퓨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zip이나 gz등으로 끝나는 파일 이름을 접하게 되는데, 이것들이 압축된 파일들이다. 고급의 수학이론에 기반을 둔 압축 알고리즘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유용성의 측면에서 수학을 보게 되면서 조심해야 할 측면도 있다. 현대수학의 유용성의 예로 위에서 언급한 신호압축에 사용되는 푸리어 해석학 이론은 정보시대가 도래하기 훨씬 전에 수학자들이 이미 연구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연구를 촉발한 동기는 무엇일까라고 당연히 묻게 된다. 적어도 그 시절에는 유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이에 대한 답은, 결국 수학 또는 과학도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학문이라는 큰 범주로 보아야 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왜 해석학이라는 수학의 분야를 연구하는가라는 질문 대신에, 왜 학자들은 학문을 연구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인간이 억압이나 불편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것은 본능의 영역에 속하는데, 자연현상이나 주변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즉 무지는 이러한 불편함의 중요한 예이다. 이러한 무지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노력을 과학 또는 보편적 학문의 과정으로 본다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상당히 많은 경우에 이러한 학문적 연구는 실제 생활에 유용한 응용이 있기도 하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의외의 유용성이 발견되기도 한다. 하지만 유용성이라는 동기만으로 학문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의외의 유용성이 갖는 강력한 힘을 잃어버리게 되고, 문명의 진보 자체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장기적 국가경쟁력이라는 관점에서도, 이러한 학문의 속성에 대한 찬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학문지원 정책이나 연구비 정책이 수립될 필요가 있다.
박형주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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