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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작가회의 참석 김주영-아라이 대담/ 소설가에 고향과 가난의 의미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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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작가회의 참석 김주영-아라이 대담/ 소설가에 고향과 가난의 의미는 무엇인가

입력
2009.07.1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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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과 가난은 문학의 오래된 화두다. 근대화 이면에서 사라진 농촌공동체의 가치와 질서의 회복,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가면 도망치고 싶은 양가적 감정 등은 한국문학이 오랫동안 '고향'을 통해 환기해온 문학적 주제들이다.

고향이라는 단어와 마치 연관 검색어처럼 따라다니는 '가난' 역시 마찬가지다. 가난한 유년기의 기억으로부터의 탈출, 물질적 곤궁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인간애 등은 끊임없이 변주되는 문학적 주제다.

경북 청송 출신으로 <홍어> <멸치> 등 어린시절 고향마을의 추억을 소재로 한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던 소설가 김주영(70)씨와, 붕괴돼가는 고향 티베트의 문명과 전통을 소설로 형상화해온 중국 소설가 아라이(阿來ㆍ50)씨가 '소설가에게 고향과 가난의 의미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두 작가의 대담은 제3회 한중작가회의가 열린 중국 칭하이성 시닝시 슈퍼레저호텔에서 9일 문학평론가 홍정선(56) 인하대 국문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 두 분 다 오지 중의 오지에서 태어났고 찢어지게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것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아라이 제가 어린시절을 보낸 문화혁명기 시절의 중국 농촌은 모든 중국인들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일 것입니다. 가난도 가난이지만 좋은 계급 출신이 아니라 정치적인 멸시도 고통스러웠습니다. 외지고 가난한 곳, 그리고 억압받는 하층민이라는 압박감이 제게 글을 쓰게 했습니다.

1980년대로 들어서며 도시로 나오고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게 됐지만 지금도 제 작품의 내용이나 정서는 어렸을 때의 그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왜 이렇게까지 고통을 주어야 하는가'라는 것이 제 문학이 제기하는 질문입니다.

김주영 이념적인 것이든, 종교적인 것이든 모든 작가들은 화두를 품고 있지요. 제 화두는 가난입니다. 혹시 제 작품 중에 성공한 것이 있다면 어렸을 때의 가난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가난은 사람을 고상하게도 하고, 저급하게도 할 수 있지요. 가난의 문제를 심도있게 다룸으로써 인간이 가진 본연의 그리움, 행복 같은 내면의 문제를 쪽집게처럼 집어낼 수 있습니다. 역사소설이건 현대소설이건 같습니다.

- 유년기의 고향이 두 분에게 다 아픔이고 상처이자 부끄러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 흔히 '자괴감'으로 나타나기도 하지요. 그런 감정이 글쓰기에 어떤영향을 주었습니까.

아라이 그런 부끄러움이나 좌절감이 역설적으로 작가들에게는 긍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 격리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경험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다른 사람보다 민감하게 관찰할 수 있게 만든 것 같습니다.

김주영 소설뿐 아니라 모든 문학활동은 '치유'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어딘가 병들어 있다는 것이 전제된 것이지요. 사람들은 살다보면 허상이 생기는데 가난에서 오는 고통은 허상이 없습니다. 가난은 허상을 치유하고 인간 본래의 모습에 다가가게 합니다.

아라이 어렸을 때의 고통스런 기억이 다른 작가들보다 이른 20대 중반부터 글쓰기를 하게 한 것 같습니다. 인간은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면 점점 문화에 대해, 역사에 대해 질문하게 됩니다. 요즘 제가 역사소설을 쓰는 이유이지요.

김주영 가난은 인간을 조숙하게 합니다. 가난을 겪으면 사람은 눈치가 늘고 비겁해지기 시작하지요. 비겁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내가 비루해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곧 치유라고 생각합니다.

- 두 분 모두 도시로 나와 성공한 소설가들입니다. 두 개의 세계를 품고 있다는 의미도 되겠지요. 유년기에서 자란 세계와 지금의 세계가 다릅니다. 그것은 작가에게 축복입니까, 아니면 불행입니까.

아라이 두 세계 사이의 격차가 너무 심하게 나서 제가 자랐던 시골마을에 돌아가면 사람들은 이렇게 성공한 소설가가 된 것을 믿지 못합니다. 제가 지금 50만부가 판매되는 '과학환상세계'라는 잡지의 편집장이기도 한데요, 언젠가 저를 취재왔던 방송국 사람들이 대도시에서 기차를 10시간이나 타고 가야 하는 제 고향에 가보곤 어떻게 여기서 자란 사람이 도시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 믿지를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건 축복도 저주도 아니고 그냥 제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주영 소설가란 과거를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이지요. 저도 가끔 사람들과 고향에 가는데 제가 태어난 집은 절대로 안 보여 줍니다. 너무 초라해서지요. 현재에 대한 오욕이 그 집에 묻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운전사가 딸려있는 자가용을 타고 좋은 옷 입고 마음에 안맞으면 버리는 지금의 된맛?생활은 스스로 '과거에 대한 배신자'라는 생각이 들게도 합니다. 소설가로서의 자격상실감을 느낀다고 할까요.

- 두 분은 어렸을 때와는 다른 표준말, 보편적인 말을 사용합니다. 소설가는 삶을 반성하는 윤리적인 인간인데, 내가 '저 사람들을 버렸다'라는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지요.

아라이 그런 자책감이 확실히 있습니다. 어떤 때는 그런 자책감 때문에 글을 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글쓰기는 그 치유의 행위입니다.

김주영 늘 고향에 봉사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든 기여하려고 애씁니다.

아라이 저도 고향에 소학교와 작은 박물관을 하나씩 세워주었습니다.

- 한ㆍ중 작가회의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아라이 현재 중국은 한국보다 조금 발전이 늦은 나라입니다. 선진국의 많은 문화적 경험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 회의에서 만난 한국 작가들로부터 그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중국 작가들에게 큰 문학적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주영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과 중국이 유교와 불교라는 정신적인 자산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치관이 같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물질에 젖어드려는 우리를 구제할 수 있는 공통의 길을 양국 작가들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프로필

김주영(金周榮)

▲1939년 경북 청송 출생 ▲1971년 월간문학에 ‘휴면기’ 발표 등단 ▲현재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 ▲장편소설 <객주> <활빈도> <외설 춘향전> <홍어> , 소설집 <겨울새> <새를 찾아서> 등 ▲유주현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 수상

아라이(阿來)

▲1959년 중국 티베트족자치구 마얼캉 출생 ▲현재 쓰촨성 작가협회 주석 ▲시집 <쒸모허> , 소설집 <지난날의 혈흔> <달빛 아래의 공예가> , 장편소설 <색에 물들다> 등 ▲중국작가협회 소수민족문학상 수상, 주요 작품들이 14개 언어로 번역

시닝(중국 칭하이성)= 글·사진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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