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탕~" "쓱싹 쓱싹~" 지난 1일 오후 2시 대전 중구 중촌동 한 건물 4층. 50평 정도의 실내에 탁자 여러 개가 놓여 있고 사람들이 둘러 앉아서 무언가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손톱만한 작은 금속 부품에 고무패킹을 꽂고 작은 망치로 두드려 넣는 이들의 손길이 빠르지는 않지만 꽤 숙련돼 보였다.
옆에서 이를 넘겨받아 또 다른 부품과 결합하는 식으로 분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좀 떨어진 작업대에서는 종이를 접어 풀칠해 붙이면서 쇼핑백을 만들고, 문구용 아크릴판을 포장하는 일도 한창이었다.
여느 영세 작업장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40명은 모두 3급 이상의 중증 장애인이다. 자신이 앉은 의자보다 키가 작은 아주머니도 있고, 한쪽 손을 못써 한 손으로만 작업하는 아저씨들도 있다.
싱글벙글 웃으며 물건을 옮기는 청년은 언어 장애인이다. 월급은 많아야 25만원 정도지만 이들은 "남들처럼 출퇴근하며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에게 '일하는 즐거움'을 선사한 이는 대전밀알선교단 단장 여광조(46) 목사다. 이곳 '밀알작업장'을 17년째 운영하고 있는 그에게 장애인과의 인연은 대전맹학교 교사인 동갑내기 아내 송미경씨와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시작됐다.
1984년 어느날 밤 대전의 조그만 교회 예배당. 한 구석에서 여대생은 시력을 회복시켜 달라며 흐느끼고, 좀 떨어진 곳에서는 막노동으로 생계를 잇는 가난한 신학생이 학비를 걱정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송씨는 고등학생 때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뒤 공주사대 가정교육과 재학 시절 나머지 눈마저 시력이 약해지면서 결국 교사의 꿈을 접고 자퇴했다. '베체트병'이란 희귀병이었다.
두 사람은 이렇게 고난 속에서 만나 사랑을 싹 틔웠다. "남편은 그 때 저를 자전거에 태우고 함께 점자를 배우러 다녔어요."
송씨는 결국 86년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그래도 여씨의 사랑은 흔들리지 않았다. 송씨가 대전맹학교 입학상담을 할 때도 소아마비 장애인인 그녀의 부모님을 대신해 보호자로서 동행했다. 송씨는 자신이 너무 큰 짐이 될 것 같아 여씨를 멀리했지만, 여씨는 꿈쩍하지 않았다.
당시 신학대학원생이던 여씨는 맹학교에서 입시 준비를 하던 송씨에게 국어, 영어, 수학을 잘하는 친구들을 과외선생으로 보냈다. 그 정성에 감동한 송씨는 다시 마음을 열었고, 89년 여씨가 다니는 침례신학대 기독교교육과에 입학했다.
"형편이 좀 나아졌는지 남편은 자전거 대신 중고 오토바이를 구입해 저를 태우고 등ㆍ하교를 했어요."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던 '캠퍼스 커플'은 2년 뒤 대학 강당에서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 결혼했다.
시각장애인 아내에 대한 극진한 사랑은 진로도 바꾸게 했다. "원래 다른 목사님들처럼 교회에서 목회할 생각이었지만 아내를 만난 뒤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평생 아내를 사랑하듯 장애인들을 섬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여 목사는 장애인단체에서 한동안 일한 뒤 93년 밀알작업장을 열었다. 처음에는 장애인들이 일한다고 하니 일감을 잘 주지 않아 어려움이 컸지만 그는 열심히 발품을 팔고 장애인들은 성실히 일해 신뢰를 쌓아 이제 일감 걱정은 없어졌다. 특히 휴대용 가스레인지의 기화기 부품은 국내 소비량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만들어 4개 완제품 공장에 납품하고 있다.
그는 단순작업조차 불가능한 중증 장애인 10여명을 보살피고 교육하는 주간보호센터를 별도로 운영한다. 또 지난해에는 허름한 주택 한 채를 구입, 주택공사와 충남대 임산공학과 교수 및 학생들의 도움으로 리모델링을 한 뒤 집 없는 장애인을 위한 보금자리로 제공하고 있다.
정부가 사회복지사 인건비를 보조해주고, 나머지 운영비는 교회들과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늘 부족하다.
자녀 2명 등 네 식구가 작은 서민아파트에 살면서도 그는 급여의 절반을 따로 떼어서 장애인을 위한 일에 쓰고 있다. 밀알작업장 외에도 대전지역 장애인 150여명을 정기적으로 만나 식사를 대접하고, 딱한 사정이 있는 장애인들에게 먼저 달려간다.
남편 만큼이나 욕심이 없는 아내 역시 장애인 섬김을 소명으로 생각한다. 한마디로 '부창부수(夫唱婦隨)'이다.
여 목사가 장애인 자활을 위해 뛰는 동안 송씨는 특수교육 교사가 됐다.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특수교육, 상담 등 석사학위를 받은 뒤 2003년 임용고사에 합격, 모교인 대전맹학교에서 고등부 담임교사와 상담부장을 맡고 있다.
동료 교사는 그를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도움을 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연애시절부터 20년 넘게 지켜본 대전맹학교 이화순 교감은 "역경을 극복하고 다른 장애인을 섬기는 두 사람이 너무 아름답다"고 말했다.
요즘 여 목사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밀알작업장을 '사회적 기업'으로 혁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근 정부와 대전시의 지원을 받아 좀더 부가가치가 높은 업종의 공장을 짓고,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 일터를 제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송씨는 "내게 남편의 모습은 시력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멋진 20대 청년으로 남아 있다"며 "그때나 지금이나 남편의 한결 같은 열정과 헌신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대전=전성우 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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