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춘천을 잇는 새 길이 뚫린다. 서울에서 1시간 30분 이상 걸리던 춘천길이 40분대로 줄어든다. 고속도로라는 '축지법'의 마술 덕분이다. 15일 개통되는 경춘고속도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볼 춘천과 화천의 볼 만한 곳을 소개한다. 이제 한 걸음 더 가까워진 풍경들이다.
■ 소양호 청평사
섬은 아니지만 육로보다 뱃길이 편한 절이 있다. 소양강댐에서 20분 뱃길로 가는 춘천의 청평사다. 배후령을 넘어 이어지는 지금의 포장길이 뚫리기 전, 뱃시간을 놓치면 이 '육지속 섬'에선 영락없이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청평사 나루에서 배를 내려 상가단지를 지나면 초록이 짙은 숲길로 접어든다. 상가의 번잡스러움을 금세 잊을 수 있는 초록 터널이다. 숲길을 오르다 보면 '공주와 상사뱀'을 형상화한 조각을 만난다.
중국의 한 공주를 사랑했던 청년이 왕에게 죽임을 당하자 뱀으로 환생, 공주의 몸을 감고 떨어지지 않는 상사뱀이 됐다는 전설을 담고 있는 조각이다. 공주는 상사뱀을 떨쳐내려 이곳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사랑이 낳은 집착과 그 집착의 끝인 파멸을 그리고 있는 슬픈 사랑 이야기다.
조각상을 지난 계곡은 얼마 안 가 큰 물소리를 낸다. 작지만 고운 구성폭포다. 20여분 숲길 산책 끝에 만나는 청평사는 건물이 아닌 절이 들어앉은 자리가 감상 포인트다.
고려 광종(973년) 때 창건한 사찰은 한국전쟁 등 전란을 거치며 회전문을 제외하고는 모든 건물이 훼손됐다. 지금의 대부분 건물들은 최근 지어진 것들로 단청 물감이 아직도 마르지 않은 듯 고풍스럽지 못하다. 하지만 위치는 기가 막히다.
오봉산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자리에 들어앉았다. 마치 이 절을 앉혀 놓고 산을 깎아낸 듯 조화가 절묘하다. 절을 오르는 계단의 중간쯤에서 그 풍경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마당에 선 두 그루 전나무 사이로 사찰과 오봉산 기암이 한 폭의 그림으로 펼쳐진다.
소양강댐 출발 배편은 오전 9시 30분부터 1시간 간격으로 운항한다. 소양강댐 마지막 배는 오후 5시 30분. 청평사 출발 마지막 배는 오후 6시다. 뱃삯 왕복 5,000원. (033)242-2455. 청평사는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다 성인 1,300원.
■ 파로호 평화의댐
어감은 평화롭기 그지 없으나 뜻은 살벌하기만 하다. 중공군 대부대를 수장시킨 것을 기념해 오랑캐를 물리쳤다는 뜻으로 이름 지어진 파로호(破虜湖) 이야기다. 소양호와 함께 '물의 나라' 화천을 둥실 띄우고 있는 맑은 호수다.
파로호 물줄기에는 2개의 댐이 붙어 있다. 1944년 완공된 화천댐이 호수의 아래쪽을 틀어막고 있다면, 맨 위에선 평화의댐이 주둥이 역할을 하고 있다.
평화의댐은 곡절이 많은 댐이다. 80년대 전두환 정권의 '금강산댐 공갈'로 전국 코흘리개의 저금통 깬 돈까지 끌어 모아 짓기 시작했고, 2003년 들어 금강산댐의 균열이란 새 문제가 야기돼 2단계 공사로 지금의 대규모로 완성됐다.
댐은 물을 가두고 있지 않다. 물을 가둬 전력을 생산하거나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일반 댐들과 달리, 오로지 '물폭탄'의 비상사태를 대비하는 시설물이기 때문이다.
댐 주변에는 여러 공원이 조성됐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시설은 물문화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종'이다. 지난 5월 첫 종소리를 울렸다. 29개국에서 탄피를 모아와 만든, 1만관(37.5톤)에서 1관 빠진 9,999관 무게의 종이다. 탱크 한 대 무게와 맞먹는 셈이다. 종의 지름은 276㎝, 높이는 467㎝에 달한다.
종 윗부분에는 네 마리의 비둘기 장식이 있다. 이중 북쪽의 비둘기 한 마리는 날개가 한 쪽밖에 없다. 따로 보관 중인 나머지 날개 한 쪽의 무게가 1관(3.75㎏). 통일이 되는 날 이 날개가 제자리를 찾아 1만관의 종이 최종 완성된다.
평화의 종 아래엔 '초연이 쓸고 간'으로 시작하는 노래 '비목'을 테마로 한 비목공원이 있고, 건너편엔 거대한 목종이 걸려 있는 '벨파크'가 있다. 평화의 댐을 찾은 관광객이 잠시 앉아 쉬었다 가기에 좋은 곳이다.
■ 화악산 삼일계곡 곡운구곡
전국의 산하를 놓고 산 좋고 물 맑은 걸 견준다면 화천도 내세울 게 많다. 화천의 총 면적이 907㎢인데 그 중 86% 이상이 산이다. 1,000m를 훌쩍 넘는 적근산(1,073m), 대성산(1,174m), 백암산(1,179m), 사명산(1197m), 광덕산 (1,046m), 화악산(1,468m) 등 고봉들이 즐비하다.
첩첩의 산중이 고아낸 맑은 화천의 계곡들이 올 여름 청정 휴식을 즐기려는 피서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화천에서 가장 높은 화악산은 아름다운 삼일계곡과 용담계곡, 사내천의 물길을 냈다.
기암과 노송이 어우러진 곡운구곡이 사내천과 삼일계곡에 걸쳐 있다. 15km 정도 되는 이 물길은 청옥협, 신녀협, 방화계, 명옥뢰, 백운담, 와룡담, 명월계, 융의연, 첩석대 등의 9가지 절경을 품고 있다. 조선의 문인 곡운 김수증이 정쟁에 환멸을 느껴 이리 내려와 삼일계곡에 '화음동정사'를 짓고는 곡운구곡과 벗하며 은둔했다고 한다.
삼일계곡은 계곡 초입부터 숲이 울창하고, 물길을 따라 평탄한 바위가 곳곳에 펼쳐져 있어 자리만 깔면 최적의 피서를 보낼 수 있다. 삼일계곡을 따라 난 341번 지방도로를 타고 한참을 오르면 군 훈련장 옆으로 비죽 하늘로 솟은 촛대바위를 만난다. 이 길은 최근 뚫린 터널을 통해 가평으로 연결된다.
화악산과 멀지 않은 광덕계곡도 화천이 자랑하는 청정계곡이다. 광덕산과 백운산 사이 골을 이뤄 초록의 냉기를 뿜는 곳이다. 계곡을 끼고 민박집과 음식점, 펜션이 많이 늘어서 있다.
춘천·화천=글·사진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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