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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나무의 노동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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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나무의 노동이 부럽다

입력
2009.07.08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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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다 장마다 하루하루의 기상 예보는 자연스럽게 계절을 여름으로 옮겨놓았다. 사람들은 여름을 피해 어디에선가 휴식할 것을 생각하지만 나무들은 여름을 치열한 노동의 기회로 맞이한다.

싱그럽던 잎들은 부지불식간에 투박하고 칙칙한 그들만의 전투복으로 갈아입었다. 그야말로 치열한 노동을 위한 변신을 꾀한 것이다. 여름의 풍부한 빛과 물, 그리고 사람에게는 참기 어려운 무더위가 나무들에게는 최상의 노동조건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리도 관심을 갖는 기상 조건은 오히려 나무들에게 더욱 절대적인 정보들이다. 일년 중 절정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무들은 여름 긴 하루를 숨 가쁘게 노동한다.

여름 한철 동안 집중되는 치열한 노동의 결실로 나무는 새로운 뿌리를 만들고 가지를 키우고 내년에 자랄 충실한 눈(동아)을 만들고 올 봄에 잉태한 씨앗을 살찌운다. 매년 봄, 빈 가지에서 새잎이 돋는 경이로운 현상은 사람들의 이목을 충분히 끌어 연금술사니 마법사니 하는 찬사를 받는다. 그런데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나무의 성장 동력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바로 이 여름의 노동이 그 밑천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눈도 눈이지만 나무는 생산의 일부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몸 속에 저장하기도 한다. 매년 기상 조건이 좋을 수만은 없다. 때로 심한 가뭄이 들거나 반대로 잦은 비로 해가 부족할 수도 있다. 이럴 때 나무는 좋은 시절에 비축한 물질을 근거로 생활한다. 나무의 생장은 이렇게 안정된다.

자라는 것은 나무만이 아니다. 나무의 노동으로 축적된 물질은 나무 스스로를 포함한 숲의 다른 생물들에게 또 다른 노동의 기반을 만들어 주고 궁극적으로 숲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살찌운다. 나무가 생산해내는 물질량은 다른 생명들을 부양하는 힘을 가진다.

흔히 말하는 숲의 생물 다양성은 사용 가능한 자원의 양과 비례하며, 자원의 양이란 바로 식물이 생산한 물질이 기본이다. 개개의 나무들이 생산한 물질은 매년 가을 낙엽을 통해 숲 바닥이라는 공동의 자산으로 비축된다. 숲 바닥의 풍부한 물질은 약하고 힘없는 개체들을 당분간 돌보게 된다. 숲 안에서 보면 한 순간도 노동하지 않는 나무는 없다. 그것이 위대하든 초라하든 간에.

노동은 생물이 살아가는 기본 활동이다. 그런 면에서 노동권은 생존권이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짐승이든 하다못해 흙 속의 미물도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 필요한 물질과 에너지를 얻는다. 노동의 권리에서 보면 나무들은 이 땅의 많은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할 것이다. 스스로의 의지대로 시절에 따라 최선을 다해 노동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노동의 의사가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부당하는 사람들이 생존권의 위기에서 흔들리고 있다. 가장 숭고한 노동의 권리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정치 사회적인 제도에 의해 거부당한다. 그들의 대부분은 미래를 위해 비축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이 하루의 노동으로 하루의 생존을 버티는 불안정한 개인들이다. 개인이 불행하면 사회도 불행하다. 숲이 약한 개체를 돌보듯 우리 사람 사회도 약한 자들을 보살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숲이든 국가든 조직이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장마와 함께 시작되는 지루한 여름 방학 동안 필자의 노동은 일시적으로 중단된다. 그래서 매년 이즈음의 나무들이 치열한 노동으로 날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 심한 질투가 난다. 겨울은 그렇다 하더라도 여름은 정말이지 지독히 나무의 노동이 부럽다.

차윤정 생태전문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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