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자요? 장부상 흑자야 얼마든지 낼 수 있지요.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흑자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정직과 투명입니다."
김정태 하나은행장은 8일 본지 인터뷰에서 그 어떤 것도 시장 신뢰보다 값진 것은 없다고 했다. 시장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흑자 보다는, 시장의 믿음을 얻을 수 있는 적자가 더 낫다는 얘기였다.
지난 1분기. 하나은행은 4대 시중은행(국민 우리 신한 하나) 가운데 유일하게 적자를 기록했다. 키코 손실을 입은 태산LCD에 대한 충당금을 한꺼번에 쌓았기 때문이다.
"충당금을 좀 덜 쌓았다면 1분기에도 흑자를 낼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회계상 흑자를 내 뭐합니까. 적자가 나더라도 부실을 투명하게 다 공개하는 것이 결국은 고객과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길이지요."
사실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부실을 노출시키고 털어내는 것은 하나은행의 오랜 경영철학이자 전통이다. 2003년 SK글로벌 거액 분식회계 사태 때도 당시 김승유 하나은행장(현 하나금융그룹회장)은 주채권은행장으로서, 무려 1조원에 달하는 대손충당금을 쌓았다.
당장은 감내하기 힘든 결정이었고 이로 인해 천문학적 규모의 적자가 났지만, '숨김없이 다 드러낸다'는 하나은행의 투명 경영철학은 결국 시장의 신뢰를 이끌어 냈다. 뿐만 아니라 위기를 통해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정태 행장은 "정직과 투명이 없었다면 하나은행이 이처럼 성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은행의 근간은 이익이 아니라 바로 신뢰다"고 강조했다.
물론 하나은행에도 고민은 있다. 바로 규모다. 빅4 은행 가운데, 몸집이 가장 열세다. 시장에선 '은행권이 빅3로 재편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몸집을 좀 불러야 하는 하나은행으로선 은행 인수합병(M&A) 얘기가 나올 때마다 늘 그 중심에 있었다.
김 행장도 "언제나 그렇듯이 M&A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은행 경쟁력 제고를 위해 내실을 다지는데 좀 더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실 다지기의 한 예로, '자산 재조정'을 언급했다. 김 행장은 "현재 수익이 나지 않은 곳에 가 있는 돈이 너무 많다"며 "자산 포트폴리오에 대한 구조조정을 통해 건전성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저수익 자산에 투자를 해놓은 돈을 고수익 자산으로 이동시켜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내실 다지기의 궁극적 지향점은 역시 고객이다. 김 행장은 고객서비스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차세대 선두은행으로서 입지를 굳히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하나은행은 지난달 은행권 최초로 차세대 운영시스템인 '팍스 하나'를 도입,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고객이 인터넷뱅킹에 접속만 하면 모든 지점에서 정보를 공유해 언제 어디서나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김 행장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차세대'를 누구보다도 강조하고 있다"며 "시스템을 구축을 통해 향후 8,000억원 이상의 기대 효과가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영업통 출신으로 증권(하나대투증권)사장까지 지낸 김 행장은 '명성영업론'이란 독특한 철학을 제시했다. "시류에 편승하는 '상품 영업'이 아니라 하나은행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고객들이 찾아주는 '명성영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김 행장은 "대외 여전이 좋지 않지만 '정직과 투명'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 하나은행의 핵심 DNA인 영업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국내에서 고객들이 가장 믿는 은행, 실적이 가장 탄탄한 은행으로 다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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