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서서 돈 거래를 하는 사람들을 정말 오랜만에 보았다. 어릴 적에는 걸핏하면 보던 모습이었는데. 신용카드나 온라인 송금도 없었고 폰뱅킹, 인터넷뱅킹은 꿈도 못 꿀 때였다. 대개 셈을 덜 치른 잔금이나 이자 같은 푼돈으로 얼굴 본 김에 갚는다는 식이었다. 세브란스병원 앞 횡단보도, 반은 환자고 반은 보호자였다. 부녀뻘로 보이는 두 사람은 받네 안 받네 좀 투닥거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할아버지가 호주머니에 지폐를 찔러넣었다.
딸은 아니고 조카딸일까. 오랜만에 만난 조카에게 차비를 주려던 건지, 오랜만에 본 아저씨에게 조카가 약값을 보태준 건지, 단지 꾼 돈을 갚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할아버지가 한마디 했다. "돈 걱정은 않고 살어, 걱정 말어." 젊은 여자는 오금을 박듯 말했다. "죽을 때까지 꼭 쥐고 있어요. 덥석덥석 퍼주지 말고." 그래야 괄시를 받지 않는다면서 마치 노인이 되어 그 괄시를 당해본 사람처럼 야무지게도 말했다.
할아버지의 대답은 건성이었다. 시골 전답 다 팔아 아들에게 주고 서울에 올라와 뒷방 노인네가 되었던 외할아버지의 말년이 떠올랐다. 언젠가 병문안을 갔었는데 깔고 누운 요 밑에서 반듯하게 사등분으로 접은 만원짜리 석 장을 꺼내 엄마에게 주었다. 모서리가 딱 맞는 그 삼만원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엄마는 간직하고 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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