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문제라는 장마전선이 한반도에 형성되면서 호우가 쏟아지고 있다. 한동안 물러날 것 같지 않은 장마의 성격에 대한 논쟁만이 요란한 가운데 이미 곳곳에선 물난리 소식이 들린다.
비정규직 문제는 어제오늘 새로 생긴 게 아니다. 어떻게 보면 비정규직은 자연발생적 현상이다. 정규직이 적합한 일자리가 있는 반면 오히려 비정규직이 필요한 직종도 있다. IMF 경제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의 증가가 불가피했는데, 그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비정규직 관련법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아이러니다.
당사자 체감 불안이 큰 문제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관련법은 차별금지와 비정규직 상태의 2년 이상 계속고용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이지만, 지금 문제되는 것은 2년 이상 계속고용 금지조항의 유효성이다. 이 조항에 따른 정규직 전환 효과가 얼마나 큰 지가 쟁점이다. 안타까운 것은 상반된 효과를 검증할 수 있는 과학적인 근거자료가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고, 이 와중에서 정작 고통 받는 것은 비정규직 당사자라는 사실이다.
근로자 고용 때 정규직으로 할 것이냐 비정규직으로 할 것이냐는 경영자가 선택할 일이다. 2년 이상 계약금지 조항은 이러한 경영자의 선택권 자체를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경영자는 비정규직 고용계약을 2년 이상 연장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근로자가 직무를 파악하고 숙련되는 시점에서 신규로 근로자를 뽑아야 한다는 점에서 경영자에게도 일부 손실이 예상되지만, 계약이 종료되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충격은 훨씬 크다.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와 같은 자유시장 국가에서는 기업자율적 사항으로 정부가 강제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업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환경이 개선되도록 정책을 이끄는 일이고, 이때 정규직 고용에 따른 비용부담을 감소시켜주는 것이 요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규직과 비정규직 고용의 비용 차이를 국가가 완전히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서는 정규직 전환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한계가 있으며, 정작 도움이 절실한 중소기업에는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선진국에도 비정규직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같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비정규직 차별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임금 차별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는 데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보다 질병 재해 실업 노령 등 각종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근로자를 지켜주는 안전망인 사회보장제도가 충실히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임금 격차도 해소되지 않고 있지만 비정규직의 사회적 불안요소가 더 심한데도 사회보장의 사각지대가 큰 것이 문제다. 참여정부에서는 비정규직도 사회보험에 가입하면 된다는 식의 해법을 제시했지만 현실적으로 보험료 납입능력이 부족한 비정규직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동등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따라서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격차 해소는 기업 차원에서 스스로 해결하도록 정부가 유도하는 한편 비정규직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제도를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정부가 할 수 있는,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는 기업에 대한 애매모호한 지원책보다 투명하고 현실성이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의 재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라는 장마 자체를 비켜갈 수는 없더라도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 정도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손에 꼬옥 쥐어주어야 살 만한 세상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배려야말로 최근 이명박 정부가 챙기고 있는 서민 대책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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