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햇살이 비추고 있지만 얼어붙은 경기가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해빙기 살얼음판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사정은 은행권도 마찬가지. 경제회복 조짐에도 불구하고, 리스크는 곳곳에 산재해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가장 조심해야 할 때'라는게 은행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시중 주요 은행장들을 만나 하반기 금융환경과 경영전략을 들어봤다. <편집자주)>편집자주)>
"몸집 불리기는 없다. 단기성과에도 연연하지 않는다. 오로지 균형과 내실에 역점을 두겠다."
원래 '뱅커(banker)'란 보수적이다. 돌다리도 두드리는 스타일이다. 그렇다 해도 이 정도 경기회복 상황이면 좀 공격적으로 나갈 법도 한데, 그게 아니었다. 7일 만난 이종휘 우리은행장은 "하반기 경제가 출렁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 신중해야 한다. 지금은 양보다 질을 개선할 때"라고 시종 강조했다.
대부분 시중 은행들은 하반기를 맞아 일제히 영업력 강화와 시장점유율 확대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이 행장은 외형경쟁에 관한 것이라면 "한걸음 늦게 가는 것도 감수하겠다"고 했다.
사실 CEO라면 누구나 몸집 불리기에 대한 욕심이 있을 터. 아무리 내실이 중요하다해도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외형이다 보면, CEO로선 외형확대의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이 행장도 "외형 경쟁을 자제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고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한다"면서도 "그러나 지금은 이런 분위기에 휩쓸리기 보다는 은행 자체의 퀄리티(질), 즉 자산건전성과 고객서비스 제고를 초점을 맞출 때다"고 강조했다.
취임 1년을 맞은 이 행장은 이 같은 경영전략을 이미 실행하고 있다. 지난달 은행발전 테스크포스팀(TFT)을 구성, 말단행원에서 중간간부, 사외이사까지 의견을 취합한 끝에 개선 과제들을 추려냈다. 특히 중후 장대한 거대플랜 보다는, 일선현장에서 개선해야 할 '생활공감'과제가 많이 제시됐다고 한다.
이 행장은 "1등 은행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렵지만 정도경영이 최선이라는 결론이 나왔다"면서 "지속가능성장을 위해 기본과 원칙을 지키며 고객행복을 실현하는 정정당당한 영업방식이 바로 정도경영"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과거 한탕주의식 캠페인이나 영업 촉진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계속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행장은 내실을 위해선 균형성장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각 사업 포트폴리오 가운데 너무 많이 나간 부분이 있으면 속도조절을 하고, 너무 뒤쳐진 부분이 있으면 끌어올림으로써 전체 영업분야와 자산이 균형을 이뤄야만 은행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행장은 취임 후 지난 1년 동안 카드부문과 해외영업부문에 대해 '속도조절'을 해왔으며, 이를 통해 균형성장 기조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은행은 국내 시중은행 가운데 기업금융이 가장 강한 은행. 기업고객이 많다보니, 구조조정 리스크에 민감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구조조정심사 대상 43개 대기업그룹 중 17개가 주채권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한 곳은 하나도 없었다. 이 행장은 이에 대해 "외환위기 이후 기업금융에 대한 철저한 리스크 관리를 해온 결과"라고 말했다.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반기 부실채권이 늘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이 행장도 "지금까지가 중소기업에 일단 응급조치를 취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턴 옥석을 가리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부실이 생기고 대손충당금 부담이 생길 수 있겠지만 충분히 감내 가능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행장은 "이젠 기본적인 영업활동 만으로도 흑자를 낼 수 있을 정도는 됐다"고 말했다.
이 행장은 "재직 동안 우리은행을 다른 은행들의 기준과 표준되는 1등 은행으로 도약할 토대를 만들 것이다"며 "그 첫걸음을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내딛는 만큼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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