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협력업체인 A사 사장 B씨는 지난해 KT 수도권서부본부 소속 한 임원으로부터 어처구니없는 불평을 들어야 했다. "얼마 전 수의계약으로 8,000만원 상당의 공사를 수주했으면서도 왜 아직도 눈치 없이 사례금을 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수의계약으로 공사를 수주한 만큼 관행에 따라 발주금액의 5%를 '성의'로 준비하라는 요구였다. 제때 성의표시를 하지 않을 경우 '매년 말 성실하지 않은 기존 협력사 30% 가량을 퇴출시키고 신규 협력사를 지정한다'는 내부 지침에 따라 협력업체 명단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특히 발주 권한을 가진 건설국장 및 지사장들에게는 착공 후 1~2개월 이내에, 현장 감독 및 과장과 부장급에게는 준공시점에, 정산부서 직원에게는 정산비 명목으로 공사대금 정산 시기에 맞춰 정해진 금액을 상납해야 한다는 말에 B사장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KT의 고질적인 비리구조가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형사2부(김성은 부장)는 협력업체들로부터 금품을 받아온 혐의(배임수재)로 KT 수도권서부본부 A(54) 국장 등 KT 전ㆍ현직 임직원 147명과 이들에게 금품을 건넨 협력업체 대표 등 178명을 적발, 이 가운데 7명을 구속 기소하고 4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7일 밝혔다.
또 중국으로 달아난 협력업체 대표 1명을 수배하고 금품수수 액수가 비교적 적은 KT 직원 123명에 대해서는 자체 징계토록 KT측에 통보했다.
검찰에 따르면 A국장은 2004년 12월부터 2006년 7월까지 협력업체로부터 공사편의 제공, 하자 묵인 등의 명목으로 3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B(50) 본부장은 2004년 1월부터 2006년 6월까지 부하 직원들에게 8,000여만원을 상납받았으며 다른 직원들도 23개 협력업체들로부터 모두 18억원을 받았다. 이들은 '사례금' 외에도 '골프대회 찬조금', '명절 떡값', '휴가비', '연말 인사', '회식비' 등의 명목으로 돈을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협력업체 재선정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해주거나, 광케이블망 공사 등 공사수주를 알선해주는 등의 대가로 정기적으로 뒷돈을 받아온 것으로 조사됐다.
수의계약의 경우 발주금액의 5%, 입찰계약의 경우 발주금액의 1~2%를 관행적으로 챙겨왔다고 검찰은 밝혔다. KT 수도권서부본부의 경우 1억원 미만의 공사는 수의계약으로 체결했으며 2004~2008년 5년간 공사 발주금액(3,339억원) 가운데 68%(2,275억원)가 수의계약으로 이뤄졌다.
수도권서부본부는 특히 '퇴직자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퇴직자들을 협력업체 직원인 것처럼 꾸며 해당업체에서 일을 하지 않고도 매달 200~300만원씩 월급 명목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 4명의 퇴직자가 2,400~7,200만원씩 챙기기도 했다.
이처럼 비리가 만연하자 협력업체로부터 하청을 받은 업체 대표 C(51)씨는 KT에 진정서를 제출했다가 진정을 취소해주는 조건으로 국장급 임원 2명으로부터 9,500만원을 뜯어내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본부장이나 국장들이 공사 발주 권한을 갖고 있어 수도권서부본부와 협력업체는 사실상 '주종 관계'와 다름없었다"며 "금품 수수 비율과 시기까지 사실상 명문화돼 있을 정도로 비리 관행이 광범위하고 뿌리깊게 박혀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같은 상납의 고리가 수도권서부본부에서 KT본사에까지 연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강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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