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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부대 특전사 요원 4명, 이달 말 파병 앞두고 하루 12시간 맹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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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부대 특전사 요원 4명, 이달 말 파병 앞두고 하루 12시간 맹연습

입력
2009.07.0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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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전 경기 과천시 관문동의 조선시대 객사 온온사(穩穩舍) 뒤뜰. 'X'자로 엇댄 작수목 두 벌이 떠받친 2m 높이의 줄 위로 특전사 복장을 한 군인이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줄타기를 할 태세다. 짙은 녹음에 싸여 이름처럼 평온하던 아침 공기를 가르며 일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른손에 부채를 쥐고 정면 허공을 응시한 군인의 눈매가 진지하고 매섭다.

줄 정 중앙에 닿은 군인은 책상다리로 가만히 앉더니, 왼발과 오른발을 빠르게 교차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난이도가 높은 '두 무릎 훑기'다. 한동안 동작을 이어가던 군인은 갑자기 중심을 잃고 줄 아래 떨어졌다. 줄에 쓸린 정강이가 꽤나 아플 듯 했다. 하지만 군인은 아픔도 잊은 채 아쉬움의 탄성을 내질렀다. "아! 여기서 넘어야 가야 되는데 왜 안 되는 거야!"

군복 차림으로 줄타기 연습에 한창인 이들은 동명부대 소속 이상우(30) 대위와 허재연(30), 이훈(25), 정찬주(24) 중사. 동명부대는 7월 말 레바논 남부 티르 지역에 파병돼 6개월간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레바논 현지에서는 정찰 등 작전 활동도 중요하지만 주민 친화 활동도 꾸준히 펼쳐야 한다. 외국 군대를 겨냥한 테러가 잦은 곳이라 평소 지역 주민들과 친분을 쌓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줄타기는 그런 '주민 친화 활동'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줄타기를 제안한 것은 이 대위였다. "사물놀이나 북청사자놀음, 태권도 시연 등 널리 알려진 프로그램이 많지만 삼현육각 반주에 맞춰 각종 기예를 선보이는 줄타기는 시각적 효과가 강해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허 중사 등이 자원해 팀이 꾸려지자 5월 말부터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됐다. 중간에 전투 훈련 3주를 빼고 합숙 훈련을 하며 하루 12시간씩 줄을 탔다. 중요 무형문화재 58호 줄타기 예능보유자 김대균 선생은 숙소까지 제공하며 이들을 가르쳤다.

그 결과 한 달 남짓 만에 보통 사람 같으면 1년 정도 소요될 수준에 도달했다. 훈련 과정을 지켜 본 류연곤 줄타기보존회 사무국장은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기술 습득이 빠른 사람도 처음 줄에 올라 작수목을 가로질러 반대편 말뚝으로 내려 오려면 보통 3~4주 정도 걸려요. 그런데 이 양반들이 꼬박 한나절을 끙끙대더니 저녁 때쯤 20여m 줄을 가로 지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 특공 무술 등으로 단련된 강한 체력과 남다른 운동 신경이 주효했다. 줄타기는 기초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 지름 3㎝ 가량의 줄 위에서 완벽한 중심을 잡으며 7~10분간 기술을 선뵈려면 2,000m를 전력 질주하는 것과 맞먹는 체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줄 위에 올라가면 발이나 엉덩이가 아프지 않느냐"는 우문을 던져봤다. 이 훈 중사는 대뜸 "줄 위에 올라가 보셨어요?"라고 되묻더니 이내 "(얼마나 아픈지) 안 올라가 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경쟁 심리도 한 몫 했다. 이 대위는 "한 명이 기술에 성공하면 나머지도 앞 다퉈 연습을 하다 보니 경쟁이 된다"고 귀뜸했다.

고난이도 기예 중 하나인 '쌍홍잽이'(양다리 사이로 줄을 끼고 앉았다가 줄의 반동을 이용해 튕겨 일어서는 동작)는 이 대위만의 특기다. 무쇠같이 단단한 줄이 엉덩이 뼈에 직접 닿기 때문에 오랜 기간 수련하지 않으면 엄청난 통증을 동반하는 이 동작을 거뜬히 해내는 이 대위를 일러 김대균 선생은 "신의 엉덩이"이라며 놀라워했다.

하늘 높이 몸을 날려 한바퀴 돌아 내려앉는 '거중틀기'는 허 중사, 황새처럼 외 무릎을 꿇고 앞으로 가는 '황새 두렁 넘기'는 정 중사의 장기다. "허벅지가 너무 아파서 남이 하는 것조차 보고 싶지 않다"는 '옆 쌍홍잽이'(줄을 옆으로 타고 앉았다가 다시 옆으로 올라와 서는 동작)는 이 중사가 집중 연마하는 기술이다.

지난달 말에는 여인국 과천시장 앞에서 조촐한 시연회도 열었다. 주민 간담회에 참석했던 여 시장이 "특전사 요원들이 줄타기를 배운다"는 소문을 듣고 온온사를 찾았던 것. 조금 서툴긴 했지만 다양한 줄타기 기술을 선보였고 무엇보다도 "과천 시민을 위한 시정을 펼치라"는 내용의 즉석 재담도 함께 풀어내 호평을 받았다.

이들의 목표는 평화유지군 임무의 성실한 수행은 물론, 현지 주민들에게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고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일조하겠다는 것.

정 중사는 "처음 어름(줄타기)을 배우기 시작했을 땐 우리 스스로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동안 전투 훈련과 더불어 줄타기 연습에 매진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더 단단히 무장됐다"면서 "레바논에서 한국의 위상을 한층 높이고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강주형 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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