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언 허스트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yBa'(young British artistsㆍ젊은 영국 작가군을 일컫는 말)는 영국을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이동시켰다.
1988년 골드스미스대학 동기들이 연 '프리즈' 전을 통해 출범한 yBa는 컬렉터인 찰스 사치의 공격적인 후원과 영국 정부가 제정한 터너상까지 받으면서 세계 미술계에 혁신적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들이 나타난 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다.
서울에서 영국 현대미술을 주제로 한 전시 둘이 동시에 열리고 있다.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의 '런던 콜링'(London Calling)전과 서교동 대안공간 루프에서 4일 개막한 '노운 언노운'(Known Unknowns)전은 모두 yBa를 화두로 내세우지만, yBa와는 무관한 전시다.
'런던 콜링'은 시간적으로 yBa 이후 영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움직임을 조망하고, '노운 언노운'은 yBa와 동시대에 존재하면서도 그 바깥에 있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영국 현대미술을 소개한다.
■ 지금 런던에서는, '런던 콜링'
이 전시를 기획한 유은복씨는 "yBa라는 브랜드는 영국 작가들에게 국제적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그들에게는 벗어나기 힘든 큰 그늘이었다"면서 "이제는 그 이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보다 다양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제목부터 런던을 명시하고 있는 이 전시는 영국 작가들이 yBa가 일군 국제적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여 작업에 연결시키는지를 주제로 한다.
조각가 나타니엘 라코베는 영국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물 크기의 검은 헛간을 설치했다. 헛간 속에 매달린 백열등이 오르락 내리락 움직이면서 나무 틈새로 새오나오는 불빛이 방 전체에 번지는 것이, 마치 공간 전체가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헛간 속 불빛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았다는 라코베는 "그 빛을 통해 런던이라는 도시를 표현했다"고 말했다. 도시의 일상적 풍경인 공사장의 기둥, 깜빡거리는 형광등 불빛을 조합한 작품도 볼 수 있다.
데이비드 바첼러는 도시 속 색깔을 탐구하는 작가다. 영국 가정에서 쓰는 온갖 플라스틱 세제통을 매달고 그 안에 조명을 달아 현대 소비사회를 상징하는 싸구려 샹들리에를 만들었다.
그 옆에는 의도적으로 전선줄을 길게 늘어뜨렸다. 드라이든 굿윈은 정적인 이미지와 동적인 이미지의 상관 관계를 표현한다. 친형의 모습을 그린 338개의 드로잉 옆에서는 아이팟 플레이어를 통해 조합된 그 이미지들이 애니메이션처럼 상영된다.
피오나 배너는 전투기 날개를 떼어내 전시장에 옮겨왔다. 그리고 그 위에 새에 대한 표현들을 적어놓았다. 새의 이름과 모양을 따서 만들어졌지만, 무시무시한 무기로 쓰이는 전투기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피터 맥도널드는 9ㆍ11 이후 테러 방지를 위해 무장 경찰들로 가득한 영국 공항의 모습을 그렸는데, 과장되게 부풀려진 사람의 머리가 불안과 공포를 담고 있다. 2001년 터너상 수상작가인 마틴 크리드는 똥을 누는 소녀의 모습을 담은 영상물을 통해 배설 행위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27일까지. (02)379-7037
■ 우리가 인식 못 했던 것들, '노운 언노운'
yBa라는 주류 밖에서도 의미있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말하는 이 전시는 영국 현대미술의 범위를 좀 더 확장시킨다.
이 전시를 기획한 영국 이콘갤러리 디렉터 조나단 왓킨스는 "영국 현대미술의 특징은 혼성적이고 복잡하다는 것"이라며 "특히 일상 생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감성적인 작업들을 모았다"고 말했다.
전시 제목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업이라는 의미와 함께 우리가 평소 일상에서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아프리카 모리셔스 출신인 자크 님키는 아무도 원치 않지만, 어디서나 살아남는 도시 속 잡초를 탐구하는 작가다. 그는 명동, 홍대 앞 등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잡초를 캐내 예쁜 화분에 심어 전시장으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벽 곳곳에 잡초의 모습을 연필로 희미하게 드로잉했다. 그는 "영국에서는 잡초와 불법이민자를 똑같이 'alien'이라 부른다"면서 "세계 어디를 가나 잡초의 모습은 똑같은데, 그것은 이민자의 모습과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공상과학소설의 영향을 미술로 표현하는 작가인 그라함 거신은 영국 교외지역에 드라이아이스를 피워 마치 세상이 폭발할 것 같은 장면을 연출한 비디오를 상영한다. 그러나 정작 그 비디오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전시장 벽에 쓰여진 '쿵' '쿵'이라는 글씨가 그 소리를 대신한다.
소피아 헐튼은 일상 생활에서의 반전을 작품의 주제로 삼는다. 이번 전시에는 서울 곳곳에 놓인 거대한 돌 앞에 서서 그 돌을 움직이기 위해 텔레파시를 보내는 모습을 담은 영상물을 내놓았다. 물론 돌은 움직이지 않는다.
루스 클락슨은 철제로 만든 둥근 고리와 거울을 조합해 설치물을 만들고, 그 위에 예쁜 도자기 인형을 올려놓았다. 여러 거울에 비쳐 반사되고 있는 인형들을 자세히 보면 큐빅이나 바나나 껍질로 눈이 모두 가려져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반문이다. 8월11일까지. (02)3141-1377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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