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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독살 기도와 女바리스타 이야기 다룬 김탁환 소설 '노서아 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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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독살 기도와 女바리스타 이야기 다룬 김탁환 소설 '노서아 가비'

입력
2009.07.06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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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9월 고종의 생일 만찬. 잔칫상에 오른 커피를 마신 세자와 신료들이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유쾌한 웃음으로 가득했던 행사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아관파천 시기에 권세를 누렸던 러시아어 역관 김홍륙이 친러파가 몰락하고 자신은 유배가는 처지가 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요리사를 사주, 고종이 마실 커피에 치사량의 아편을 집어넣었던 사건이다.

소설가 김탁환(41ㆍ사진)씨에게 '김홍륙 독살 음모사건'은 흥미로운 소재였다. 그는 장편소설 <노서아 가비> (살림 발행)에서 커피 애호가였던 고종에게 커피를 타주었던 이는 누구였을까, 하는 데 상상력을 뻗친다. 제목인 '노서아 가비'는 고종이 즐겨마시던 '러시아 커피'를 음차한 것이다.

김씨가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로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은 최월향이다. 나라의 물품에 손을 댄 혐의를 받고 효수됐던 역관의 딸인 최월향은, 밀수입업자이기도 했던 아버지의 말("아버지를 흉내 내는 놈들, 모두 사기꾼이야")을 마음에 새기고 러시아 뻬쩨르부르그로 간다.

'따냐'라는 러시아식 이름으로 바꾼 그녀는 탁월한 외국어 솜씨와 냉철한 상황판단으로 러시아 전역의 숲을 유럽 귀족들에게 팔아넘기려는 사기단의 일원이 된다.

소설은 조직 내부자들의 연이은 배신과 암살 위협 속에서도 때로는 숲을, 때로는 보석을, 때로는 강과 바다까지 팔아먹는 배포 큰 따냐의 사기 행각을 유쾌하게 그린다. 그녀가 또다른 조선인 사기꾼 이반을 만나 애인이 되고 조선으로 돌아와 황실의 커피 바리스타가 되는 과정은 소설의 2부 격이다.

살을 섞고 사는 사람조차 믿을 수 없는 사기꾼의 세계에서 그녀가 고종을 암살하고 마지막으로 크게 한탕하자는 이반의 계획을 배반하고 외로운 군주 고종을 선택하는 기막힌 반전이 작가 특유의 입심에 흥미롭게 펼쳐진다.

김씨는 역사와 허구를 결합하는 '팩션'의 대표적 작가. 이 소설과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곡절많은 인생을 보낸 궁녀를 다룬 김씨의 소설 <리심> (2006)에 비애미가 깔려있었다면, 이번 소설에서 작가는 경쾌한 터치로 개화기의 매력적인 '팜므 파탈'을 형상화해낸다.

김씨는 "개화기를 그린 소설들이 외세 침략에 의한 국가의 비극과 개인의 몰락을 너무 무겁게 그려내는 것 같았다"며 "역사를 좀더 젊게 그리고 싶어 커피를 소재로 했고, 이런 식으로 소설을 써봤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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