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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돌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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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돌의 신비

입력
2009.07.0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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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처럼 값이 나가거나 모양이 잘 생긴 것도 아닌 잡석에 불과한 돌멩이를 수년째 모으고 있다. 조각가라서 그런지 돌멩이 하나도 무심코 지나치지 않는 습관이 있긴 하지만 돌멩이를 수집하게 된 것은 우연한 경험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갔다가 밤 늦은 시간, 토스카나에 있는 몬테 풀치아노에 도착한 적이 있다. 6세기 경 에트루리아인들이 건설한 언덕 위의 이 조그만 중세 도시는 그 날 따라 인적도 없이 불빛만 몇 개 빛나고 있었다. 고양이가 담벼락 위에 앉아 미동도 없이 이쪽을 응시하는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걷고 있으려니 저쪽에서 홀연 시인 단테가 옷자락을 끌며 나타날 것처럼 시간이 멈춘 듯한 이 도시의 비현실적인 중세의 풍광에 깊은 감흥이 일었다.

발 밑에 벽돌 한 장이 뚝 떨어져 있다. 높이 3cm, 길이 15cm의 넓적한 모양을 하고 있는 이 벽돌은 로마인들이 건물을 지을 때 즐겨 사용했던 바로 그 것이었다. 이 벽돌도 최소한 1,500년은 되었을 것이다. 달빛에 비추어 본 벽돌에서 천년 문화의 향기가 배어 나온다.

그 벽돌을 차에 싣고 파리로 돌아 온 뒤부터 여행을 가면 그 도시의 돌을 하나씩 주워 오는 습관이 생겼다.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사는 것보다는 그 도시의 진짜 역사를 담고 있는 돌멩이가 훨씬 더 그 도시를 기억하기에 좋을 듯 싶었다. 로마에 갔을 때는 콜로세움 근처에서 대리석 조각을 하나 주웠다. 이 돌에 남아 있는 인공의 흔적으로 보아 어느 건물이나 조각에서 떨어져 나온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는 발에 차이는 것이 조각이라고 했는데 이 돌을 줍고 나서부터는 그게 빈 말이 아님을 실감하기도 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나 카셀에 가서는 어떤 돌을 주울지 고민하다가 이성적이고 정형화된 독일인처럼 각이 진 사각형 돌을 주워오기로 했다. 스위스에서는 알프스를 닮은 거친 자연석을 가져왔다.

이렇게 돌 모으는 것이 소문이 나자 프랑스 친구들이 돌을 하나씩 가져다 주었다. 그리스에 다녀온 친구는 신전에서 떨어진 기와 반장 크기의 제법 커다란 돌을 가지고 왔다. 공항에서 무사통과가 되었는지 걱정스러울 만큼 문화재 냄새가 물씬 나는 돌이었다. 어떤 친구는 남극에 다녀온 친척이 준 것이라며 시커먼 돌을 하나 주었다. 극지에서 온 돌이라 그런지 머리맡에 놓아 둔 그 돌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나는 듯하다.

어느 날은 파리의 벼룩시장에서 역사박물관이 폐관되며 나온 구석기 시대의 타제 석기를 헐값에 몽땅 산 적도 있다. 수백만년 전 호모에렉투스가 만들었을 손도끼와 돌창, 돌화살촉은 그 정교함이 조각가를 놀라게 한다. 어떻게 별다른 도구도 없이 돌을 깨서 이렇게 섬세한 모양을 만들 수 있었을까? 호모에렉투스는 내가 보기에는 이미 탁월한 조각가들이었다.

이것도 수집이라고 돌을 모으다 보니 욕심이 생긴다. 지금은 갖고 싶은 돌이 운석이다. 어느 날 길을 걷는데 별들의 생성과 소멸의 비밀을 간직한 조그만 돌 하나가 내 앞에 뚝 떨어지는 행운이 올지도 모른다.

조각가에게 돌은 가장 원시적인 과거의 재료이지만 21세기에도 돌은 여전히 신비로운 존재이다. 불변의 항구성을 상징하는 단단함, 존재의 위용을 드러내는 무거움, 쉽게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 견고한 차가움, 사건과 역사와 전설이 만들어 낸 다양한 형태감, 그리고 그 속에 용해되어 있는 호모에렉투스의 영혼과 문명의 기록을 어떻게 한갓 돌멩이라고 걷어찰 수 있겠는가.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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