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LCD 업계가 '유리 전쟁'으로 뜨겁다. LCD 패널 판매가 크게 늘면서 가장 중요한 소재인 기판용 유리가 부족해진 것. 업계에서는 "유리가 없어서 LCD 패널을 만들지 못한다"고 아우성이다. 이에 따라 유리 기판의 확보가 LCD 업계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한국 업체들은 비교적 느긋한 편이다. 자체 유리 제조사를 갖고 있어 오히려 늘어나는 주문량에 즐거운 비명이다. 반면, 그렇지 못한 대만 업체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유리가 모자란다
LCD 기판용 유리 부족 현상은 전 세계적인 LCD TV의 수요 폭발과 함께 찾아 왔다. 지난해 하반기 글로벌 경기 침체로 주문 취소가 잇따랐던 TV 업계는 올 들어 갑자기 수요가 폭발하면서 LCD TV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 이런 TV 수요의 폭발은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강신익 LG전자 사장은 "지난해 10, 11월을 거치면서 주요 거래선들이 주문량의 30%를 취소했다"며 "그래서 올해 TV 사업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는데, 갑자기 1월부터 상황이 반전해 주문량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LCD TV의 수요 폭발은 패널 업계의 호황으로 이어졌다. LCD 패널을 제때 공급하지 못할 정도로 주문이 폭주했다. 그 바람에 지난달 LCD 패널 가격도 6개월 전보다 3, 4% 이상 뛰었다. 덩달아 LCD 기판용 유리 가격도 올라 유리 업체들이 특수를 맞았다.
하지만 유리 생산량이 주문량을 미처 쫓아가지 못해 LCD 업체들을 애태우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LCD 패널 업체들이 공장 가동률을 줄일 때 일부 유리 업체도 함께 공장 가동률을 줄였기 때문이다. 유리 업체에서 24시간 돌려야 하는 용해로의 가동을 중단하면 재가동하는데 최소 2, 3개월 이상 걸린다. 이는 고스란히 LCD 패널 업체의 유리 공급 부족으로 이어지기 마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유리 부족량은 LCD 업계에서 필요한 물량의 10% 내외"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한국 업체들은 낫다. 두 회사 모두 유리 제조사를 관계사로 갖고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미국 코닝과 합작한 삼성코닝정밀유리, LG디스플레이는 NEG와 손잡고 경기 파주에 파주전기초자(PEG)를 설립해 국내에서 유리를 생산하고 있다. 덕분에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필요한 수량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다.
반면, 유리를 공급할 관계사를 갖고 있지 못한 대만 업체들은 비상이다. 이들은 코닝, 아사히 글래스, NEG 등으로부터 유리를 공급받는데, 대만 LCD 업체들이 지난해 공장 가동률을 줄인 여파로 코닝과 아사히 글래스는 대만 공장을 100%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일부 유리 업체가 대만 LCD 업계에 공급한 유리에 이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국내 LCD 업계에는 호재
유리 부족은 국내 업계에 득이 되고 있다. 대만 LCD 업체들이 필요한 수량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다 보니 한국 업체에 주문이 몰리고 있는 것. 대만 업체들의 생산량 부족은 시장의 공급 초과와 LCD 패널의 가격 하락을 막는 안전판 역할도 하고 있다. 특히 유리 제조의 속성상 유리 업체들이 생산량을 늘리기는 쉽지 않다.
삼성코닝정밀유리 관계자는 "용해로 설치 등 설비가 까다로워 갑자기 생산시설을 늘리지 못한다"며 "하반기에도 유리 공급이 빠듯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닝사도 LCD 기판용 유리 부족이 3분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봤다.
그렇다고 대만 업체들이 유리 업체를 만들어 부족분을 채우기도 어렵다. 삼성코닝정밀유리 관계자는 "LCD 기판용 유리는 액정화면과 표면 접합을 해야 하는 어려운 기술이 필요하다"며 "그만큼 기술 장벽이 높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국내 LCD 업체들에겐 유리 부족이 대만 업체들과의 격차를 벌릴 수 있는 호재인 셈이다. 강정원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하반기에도 유리 부족 현상이 지속되면서 대만 LCD업체들의 생산이 제한될 것"이라며 "한국과 대만 LCD 업체 간 시장 격차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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