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일본 히로시마(廣島)대학을 방문하는 길에 기차로 한 시간 거리인 오노미치(尾道)를 찾았다. 오노미치는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에 있는 인구 14만 명의 유서 깊은 항구 도시이다. 바다와 산이 함께 있는 아름다운 자연환경 때문에 소설과 영화의 무대로 자주 등장한다.
특히 2차 대전 때 교토(京都)나 나라(奈良)와 같은 폭격 피해를 거의 받지 않아 옛날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오래된 절과 전통 가옥, 낚지 골목길 등을 중심으로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최근에는 쇼와(昭和)시대(1925~1989년)에 대한 향수를 업고 오래 전 폐업했던 대중탕이나 영화관을 카페나 갤러리로 개조하여 낭만적인 레트로(복고) 분위기가 난다.
내가 오노미치를 처음 찾은 것은 27년 전에 미국 미시건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여름방학을 이용해 일본어 연수를 하러 왔을 때였다. 오노미치 출신 친구 집에서 1주일 동안 홈스테이를 했는데, 그 때 기억으로는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길게 늘어선 재래시장은 활기차고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정말 일본인들의 삶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다시 찾은 오노미치는 활기를 잃고 있었다. 시장에는 셔터를 내린 가게가 많았다.다니는 사람도 적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유난히 많았다. 시장 옆 좁은 골목의 주택가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듯한 집도 여럿 눈에 띄었다. 그 사이 어떤 일이 있었을까.
변화의 주된 이유는 인구의 고령화이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에 따르면, 2006년 감소하기 시작한 일본의 인구는 현재 1억2,700만 명에서 2050년에는 9,000만 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는 현재 20%에서 40% 가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어느 공동체가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조건 가운데 하나가 인구 균형이다. 죽음으로 자연스레 감소하는 인구를 출산이나 외부 유입 인구로 대체하지 않으면 공동체는 활기를 잃고 결국에는 없어질 것이다. 아름다운 전통 도시 오노미치도 고령화 때문에 그렇게 사라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공동체를 내부 출산력으로 유지하기 어려우면 외부로부터 인구가 유입되게 하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다. 그러나 이민 역사가 거의 없는 일본이 '이민국가'로 전환할 가능성은 낮다. 설령 그렇게 하더라도 이민자들은 큰 도시에 몰려 오노미치와 같은 지방도시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오노미치가 자체적으로 공동체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부자 나라 일본은 왜 이토록 출생율이 낮고 인구를 유지하지 못할까? 아이 키우기가 그렇게 힘든 것인가?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가? 아니면 그냥 생활이 바빠서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가?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원인 분석이 나와 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일본 사회가 과거와 달리 개인의 편리와 행복만을 좇다 보니 공동체를 지키려는 전통적 가치관을 상실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일본보다 한층 급속히 고령화로 치닫고 있는 한국 사회, 한국인들은 스스로 공동체의 앞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로버트 파우저 교수는 일본 교토대와 가고시마대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쳤으며, 2008년부터 서울대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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