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건강은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습니다. 예컨데 고문과 같은 인권 침해는 신체적ㆍ정신적 건강을 해치고, 인권을 고려하지 않은 의료 정책은 인권에 막대한 해를 끼칩니다. 그런 만큼 의료인은 단순한 질병 치료를 넘어 환자의 인권을 살피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4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인권의학연구소를 여는 이화영(50ㆍ사진) 소장은 국내에 '인권의학' 개념을 처음 들여온 주인공이다. 이화여대 의대를 나와 종양내과 전문의로 활동하던 이 소장은 미국 조지타운대와 국립보건원(NIH) 연구원으로 있던 2001년 9ㆍ11테러와 뒤이어 '테러와의 전쟁'을 경험하면서 국제분쟁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03년부터 조지메이슨대 분쟁학연구소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중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자행된 고문을 폭로하고 고문 피해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인권의학을 접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인권운동을 펼치는 의료인을 찾아 다니며 넓힌 견문을 바탕으로 이 소장은 귀국 후 군사정권 시절 고문 피해자를 치료하는 상담 모임에 참여하는 한편, 해외 인권의학 서적과 국제 규약서 등을 번역했다. 2007년부턴 의대에 인권의학 과목을 개설, 현재 연세대와 아주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이 소장은 "방학 때 병원이나 의학연구소로만 인턴을 가던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국가인권위원회, 국제의료단체 등 다양한 선택을 하는 걸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새로 설립되는 인권의학연구소에선 의료인과 사회 활동가들을 상대로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는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 소장은 "인권 교육을 받은 의료진을 통해 의료 기관에서 발생하던 인권 침해나 차별을 예방하고, 피해자들을 의학적 차원뿐 아니라 법적, 사회적으로 도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공권력에 의한 고문 피해자, 구금시설ㆍ군대 폭력 피해자, 가정폭력 및 성폭력 피해자, 가혹 행위를 당하는 이주노동자, 자살ㆍ타살 희생자의 가족 등 인권의학 적용 대상은 다양하다"고 말했다.
존엄사에 대해선 "국내법엔 아직까지 '자살 권리'를 인정하는 규정이 없는 만큼, 의료적 결정에 앞서 법적ㆍ제도적 기반부터 갖춰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연구소는 대중들을 상대로 인권 침해 예방 캠페인 활동도 펼칠 계획이다.
나아가 이 소장은 기존 대학병원이나 공공병원에 인권 피해자 프로그램인 '인권 클리닉'을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소장은 "예컨대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클리닉이 대학병원에 생긴다면 정신과를 비롯한 여러 전문의들의 치료를 적절히 받을 수 있고, 의사들도 인권 피해자 치료 훈련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며 "치료 대상, 의료기관 특성 등에 따라 다양한 형식의 클리닉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