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11시20분 충남 천안시 태조산 자락의 중앙소방학교 내 소방충혼탑. '119'를 상징해 119m 고지에 세워진 충혼탑에 지난해 순직한 소방인 14명의 위패가 봉안됐다.
소방악대가 연주하는 조곡이 흐르는 가운데 순직자의 약력이 하나씩 소개되자 유족들 사이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젊은 남편을 화마(火魔)에 잃은 아내는 어린 자식들을 끌어안고 오열했고, 자식을 먼저 떠내보낸 홀어머니의 손수건도 금세 젖었다. 최성룡 소방방재청장을 비롯한 주요 간부, 동료 소방관 등 200여명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지난해는 소방인이 어느 때보다 많이 희생된 수난의 한 해였다. 10명의 소방관과 4명의 의용소방대원이 목숨을 잃었다.
8월 서울 은평구 나이트클럽 화재 진압에 나섰던 은평소방서 조기현ㆍ김규재 소방위, 변재우 소방교 등 3명이 건물 붕괴로 매몰돼 순직한 사고는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렸다.
변 소방교는 홀어머니를, 조 소방위는 홀아버지를 각각 모시고 있던 사연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유일한 기혼자였던 김 소방위의 어린 두 아들과 아내, 노모에 대한 국민들의 위로와 격려가 오래 이어졌다.
이에 앞서 7월에는 경기 광주소방서 119구조대 최영환 소방장이 폭우에 고립된 시민을 구하려다 급류에 휩쓸려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뒤 사흘 만에 순직했다. 그는 바로 다음날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지난해 첫 순직자인 조동환 소방위는 2월 경기 일산의 골프클럽 화재 현장에 홀로 출동, 초기 진압을 위해 널빤지를 건너다 추락해 순직했다. 충남 논산의 시골마을 의용소방대원 4명은 지난해 11월 소방의 날 기념행사장으로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중 3명은 주부였다.
위패 봉안이 끝난 뒤 동료 소방관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소방충혼탑에 헌화하고 분향하며 옛 동료들의 명복을 빌었다. 유족들은 충혼탑 뒤편 검은 대리석에 새겨진 아들과 남편, 아빠의 이름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다시 한 번 눈가를 훔쳤다. 그 옆으로는 '여기 샛별이 고이 빛날 때처럼, 님들의 희생정신 빛나고 있나니…'로 시작되는 추모시비가 서있다.
최성룡 청장은 "우리 사회가 소방 영웅들과 그 유가족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2년 중앙소방학교 안에 건립된 소방충혼탑에는 1945년 이후 순직한 소방인 총 306명의 위패가 봉안돼 있으며, 교육을 받으러 오는 소방관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됐다. 소방방재청은 순직자가 있을 경우 매년 한 차례씩 이곳에서 위패 봉안식을 거행한다.
천안=전성우 기자 swch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