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레테 브룬스 지음ㆍ조이한 등 옮김/영림카디널 발행ㆍ472쪽ㆍ1만7,000원
인간이 세계를 인지하는 일차적 창은 눈이다. 눈으로 인식되는 '형상'은 언어 이전의 언어, 무의식의 언어다. 그것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인류의 기억 너머에 있는 태초부터 인간을 매혹시켜 왔다. 이 책은 그 형상의 탄생과 소멸과 의미에 대한 여러 문명의 기록, 그리고 '말하지 않는' 형상의 목소리를 들으려 애쓰는 인간의 성찰을 담고 있다.
저자 마가레테 브룬스는 화가이자 음악가, 방송작가로 일하는 독일인이다. 동서양의 신화와 역사를 넘나들며 색채, 형태, 언어와 관련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자는 기호, 이미지와 관련한 흥미진진한 역사 여행 속으로 독자를 이끈다. 인간이 자연 속에 존재하는 형상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그리고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어떤 의미가 담긴 형상을 만들어냈는지를 추적하며 감겨져 있던 진짜 '눈'을 뜨게 돕는다.
저자가 이 책에 펼쳐 보이는 형상의 세계는 깊고 넓다. 선사시대 동굴벽화에서부터 고대 이집트, 중국의 서예작품과 문인화, 이슬람과 아라비아의 장식미술, 중세 기독교의 세밀화,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 현대 추상미술, 설치미술, 비디오아트가 총망라된다.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객관적인 인지는 가능한가, 동ㆍ서양의 인식은 어떻게 갈리는가, 형상은 아름다워야 하는 것인가….
형상이 시대와 장소, 문화권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표현되고 있으며 그것을 인식하는 것도 개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음을 저자는 보여준다. 그렇다면 형상은 어떤 가치가 포함된 것이 아닌, 다만 보여지는 것일 뿐일까. 0과 1의 디지털 이미지로 이뤄진 백남준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설명하며, 저자는 결론을 열어놓는다.
"형상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것들과 함께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 사냥꾼과 채집가로 수십만 년의 세월을 보낸 후에 그림이 그려진 동굴을 영원히 떠난 인간들만큼, 현재의 인간들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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