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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옛날 팥빙수, 돌아온 추억의 맛… "역시, 퓨전 위에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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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옛날 팥빙수, 돌아온 추억의 맛… "역시, 퓨전 위에 원조"

입력
2009.07.05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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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빙과의 제왕, 빙수.

과일빙수, 와인빙수, 커피빙수, 녹차빙수 등 끝도 없이 변주될 것 같은 현란한 퓨전빙수들이 원조 팥빙수를 축출하고 백가쟁명을 벌인 지 오래다. 하지만 어디에서든 권력은 돌고 돈다. 소박한 옛날 팥빙수들이 화려한 퓨전빙수들을 밀어내고 왕좌에 복귀하고 있다.

동네 제과점에서나 먹을 수 있었던 촌스러운 옛날 팥빙수가 명품 숍 즐비한 청담동에서부터 고즈넉한 한옥마을 효자동까지 도시 남녀들의 입맛을 잠식하고 있다. 재료도 단출하다. 얼음과 팥, 연유, 떡이 전부. 하지만 가격은 대부분 1만 안팎이다. 추억의 옛날 팥빙수가 고급 수제 팥빙수가 돼 돌아왔다.

■ '고전의 힘' 보여준 밀탑, 그 파급 효과

30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밀탑'. 흡사 은행처럼 번호표를 뽑아든 채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는 긴 줄의 고객들이 눈에 띈다. 이 빙수 전문점에선 자리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죄악처럼 느껴진다. 주문이 급선무다.

1985년 백화점 오픈과 함께 5층 한켠에서 조용히 영업을 시작한 밀탑은 팥빙수 하나로 '제국'을 일궜다. 올 봄 다른 매장들을 밀어내고 중앙부로 확장 이전하면서 층 전체를 점령하다시피 한 것.

팥빙수의 교과서로 불리는 밀탑의 대표 메뉴 밀크빙수는 직접 삶는 팥과 우유, 눈처럼 곱게 간 얼음, 그 위에 떡 몇 알이 올라간 게 전부이지만, 부드러우면서 달콤한 그 맛은 누구에게 물어도 '빙수의 지존'으로 꼽힌다.

주부 김지현(34)씨는 "여름이면 친정 어머니가 이곳의 밀크빙수를 먹기 위해 분당에서 매일 출퇴근하다시피 한다"며 "얼마나 맛이 있는지 직접 먹어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가격 7,000원.

최근 트렌드로 떠오른 옛날 팥빙수의 유행은 밀탑의 파급 효과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모든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불과하다"고 한 화이트헤드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모든 팥빙수는 밀탑 밀크빙수의 주해(註解)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하게 만들되, 좋은 재료를 사용해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린다는 것, 고전 정신으로의 회귀다.

■ 청담동부터 효자동까지 '정직한 맛'에 흠뻑

지난해 12월 문을 연 유럽 스타일 카페 '아티제' 압구정점은 올해 첫 선을 보인 복고풍 팥빙수로 마니아들을 만들어냈다. 들어간 재료는 얼음과 팥, 연유와 우유, 떡. 팥의 고소함을 죽이는 시럽이나 과일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팥 고유의 향을 살리기 위해 연유와 우유를 섞어 쓴다. 황윤찬(33) 셰프는 "연유는 향이 고소한 반면 당도가 너무 높아 우유로 희석해 쓴다"며 "적절한 당도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팥은 24~36시간 물에 불린 후 충분히 물러지도록 삶는다. 건져낸 팥에 설탕과 물엿을 넣고 볶아 팥의 단맛을 더하는 게 맛의 비결. 가격은 1만3,000원.

청담동, 동부이촌동, 롯데백화점 본점 등에 분점을 갖고 있는 '커피미학'의 팥빙수는 이름부터 '옛날 팥빙수'다. 직접 삶은 팥, 연유, 얼음에 떡 대신 콩가루가 들어가는데, 주고객층은 30~50대. 콩가루가 추억의 미각을 자극하는 데다 두 명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넉넉한 양이 매력이다.

커피미학 청담점의 최상우(32) 실장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들어간 이게 무슨 팥빙수냐고 따지는 손님이 많았지만, 지금은 일부러 못 먹고 살던 옛 시절의 맛을 찾으러 오는 고객들이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1만1,000원.

신사동 가로수길의 떡카페 '담장 옆에 국화꽃'은 옛날 팥빙수에 밤과 대추를 고명으로 살짝 얹은 팥빙수로 유명하다. 보냉, 살균 효과가 있는 방짜유기 그릇에 담겨져 나오는데, 재료는 모두 국산. 직접 팥을 삶고 떡도 직접 만든 것을 사용한다.

오숙경(42) 사장은 "대추 밤 팥빙수는 매출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주력 상품"이라며 "별다른 재료는 없지만 기본 맛에 충실한 게 인기 비결"이라고 말했다. 7,000원.

소공동과 효자동에 지점이 있는 플라워카페 '숲(SOO:P)'은 팥빙수가 빨리 녹지 않도록 얼음 속에 우유 대신 아이스크림을 파넣는다. 그 위에 팥을 덮고 다시 얼음을 덮은 후 연유를 뿌린다. 처음 떠먹으면 고운 얼음과 함께 연유의 고소함이 혀끝을 자극한다. 7,500원.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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