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동독 메클렌부르크주 출신인 비르거씨의 삶은 성공담으로 거론될 만하다. 열살 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후 뒤스부르크에서 안정된 직업을 얻었고, 지금은 지중해 크루즈 여행을 다닐 경제적 여유를 누르고 있다.
하지만 그는 현재의 삶이 동독 시절보다 크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독에 비밀경찰 슈타지가 있었다면 지금은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방송수신료수금센터(GEZ)가 있습니다. 독재와 자유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는 나아가 "오늘날 가난에 찌든 사람들 역시 여행의 자유가 없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한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 인터넷판은 3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년이 지난 지금, 동독 시절에 대한 단순한 향수를 넘어서 일종의 찬양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3일 공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 동독 출신 주민 중 무려 57%가 동독 정권을 옹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독은 나쁜 면보다 좋은 면이 더 많았다'라는 문항에 '그렇다'고 답한 이가 49%나 됐으며, 8%는 '통일 독일에서보다 동독 시절의 삶이 더 행복하고 나았다'는 문항에 수긍했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단순한 향수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가 스테판 볼레는 "오스탤지어(Ostaligieㆍ과거에 대한 구동독인들의 노스탤지어)라는 말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특히 이상적인 독재국가에 대한 열망이 옛 정권의 관료들을 넘어 동독에 대한 기억이 없는 젊은이 사이에서도 퍼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독 출신인 숀은 슈피겔에 "동독은 지금보다 독재가 덜했다. 지금은 더 풍족하게 살지만 그때보다 만족하지 않는다. 동료애나 연대의식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문제는 동독 시절에 대한 미화가 잘못된 역사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베를린 자유대학 동독 연구소의 클라우스 슈뢰더 소장은 지난해 동독 출신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 동독에 대한 젊은이들의 인식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아닌, 가족들에게서 들은 정보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젊은이들은 동독을 독재국가로 여기지도, 슈타지를 비밀경찰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며 "때문에 독일의 어두운 면에 대해 알지도 못한다"고 지적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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