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터전으로 아옹다옹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주목해왔던 부산의 소설가 이상섭(48)씨가 출구를 찾지 못하는 '청년실업시대' 젊은이들의 현실에 눈을 돌렸다.
이씨의 세번째 소설집 <바닷가 그집에서, 이틀> (실천문학사 발행)에 수록된 작품들의 무대 역시 항만도시나 어촌마을이다. 하지만 8편의 수록작 가운데 선원이 주인공인 표제작말고는 바다는 삶의 현장이 아니라 그저 소설의 배경일 뿐이다. 바닷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도서관에서 시사잡지와 신문을 뒤적이며 식당일을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가끔씩 배달을 다니는 취업준비생('플라이 플라이'), 군 입대 전 잠시 아르바이트 삼아 택배 알바에 나선 젊은이('생각하니 점점'), 바람난 새 엄마의 뒤를 밟으라는 아버지의 은밀한 명령을 받은 백수 아들('엄마가 수상해') 등이 작가가 새롭게 관심을 기울인 인물들이다.
교통대란보다 무섭다는 고용대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은 먹먹하기 짝이 없다. 경쟁률 몇십대 일은 훌쩍 넘는 공무원 시험, 그렇다고 한번 비정규직에 발을 디밀었다가는 영원히 비정규직으로 삶을 마감해야하는 현실은 '남들처럼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더라도 출근'하는 것을 꿈꾸는 소시민적인 희망마저 사치로 만들어버린다.
이런 이십대 젊은이들의 막막한 현실은 동세대 작가들에 의해 자주 다뤄지는 소재다. 하지만 청년작가들의 '백수소설' 속 젊은이들은 현실과 대결하기보다는 자기세계 속으로 함몰된 냉소적이고 무력한 인물로 그려지기 일쑤였다.
이씨는 "20년 전 내가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했을 무렵 그때도 취직이 어려웠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그들을 다독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속 젊은이들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건강한 인물들이다.
'플라이 플라이'의 백수 주인공은 대학원생인 여자친구가 아무리 노력해도 비전이 없다는 탄식을 하자 오히려 "우리의 인생은 빛이 없어도 스스로 발광체가 되어 나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포기하기엔 우리가 너무 젊다"고 격려한다. '생각하니 점점'의 주인공인 퀵서비스 알바 청년은 좌절하고 낙담하기보다는 경제위기 때문에 부도난 남편이 자살한 후 홀로 횟집을 운영하는 연상의 여인을 진정한 애정으로 감싸안으려 애쓴다.
2003년 장편소설 '바다는 상처를 오래 남기지 않는다'로 창비 신인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씨는 현재 21년차 고등학교 국어교사(부산 해운대관광고)이기도 하다. 이씨가 젊은 세대가 쓰는 다소 거친 욕설, 비속어와 존칭이 뒤섞인 말투를 자유자재로 소설 속에 녹여내며 그들의 감각을 되살려낼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는 "내 소설이 너무 낡은 리얼리즘 문법에 갇혀있다는 지적을 듣고, 가장 현재적 문제인 젊은이들의 현실에 주목했다"며 "앞으로는 환상 등의 장치를 활용한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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