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동 고개를 다 넘어갈 무렵 낡은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동네의 터줏대감인지 하얀 간판 곳곳이 매연과 먼지로 얼룩덜룩했다. 스타주름이라는 상호 옆으로 기계, 특수, 손, 부채 주름 전문이라고 씌어 있었다. 치마나 옷감에 주름을 넣는 가공집인 듯했다. 만리동 고개가 익숙해진 지 이제 3년밖에 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이 가게를 중심으로 크고작은 봉제공장들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둘러보았지만 큰길가에는 하나도 없었다. 기계나 손 주름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특수 주름은 뭐고 부채 주름은 또 뭘까. 혹시 그 옷이 바로 특수 주름 아니었을까. 십수 년 전 멋쟁이인 동생에게 주름투성이인 투피스가 한 벌 있었다. 세로나 가로 주름이 아니라 무규칙적인 주름이 자글자글 잡힌 멋스러운 옷이었다. 동생은 그 옷을 딱 한 번밖에 입지 못했다. 세탁소에 세탁을 맡기면서 아무런 언질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단골 세탁소 사장님은 동생이 세탁소에 들어서자 한껏 생색을 냈다고 한다. "아, 이 주름 다 없애느라 팔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원래 주름진 옷이라는 걸 모르고 사장님은 몇 시간이나 다림질을 했던 것이다. 주름은 또 얼마나 강했던지 그 다림질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펴지지도 않았다. 주름이 풀려 여기저기 늘어진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울던 동생 얼굴이 선연하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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