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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어머니의 연인, 아버지의 책' 나의 가족사, 내 인생에 많은 물음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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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어머니의 연인, 아버지의 책' 나의 가족사, 내 인생에 많은 물음표를 만들었다

입력
2009.07.05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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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스 비트머 지음ㆍ이노은 옮김/문학과지성사 발행ㆍ176, 276쪽ㆍ8,000, 1만원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한 인간이 어른이 되기 위해 숙명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질문이다.

전쟁에 대한 공포심리를 환상적인 글쓰기로 묘파한 <푸른 사이펀> (1992), 실업자가 된 인간군상을 통해 현대 산업사회 이면의 그늘을 풍자한 희곡 <정상의 개들> (1996) 등 사회비판적 색채가 강한 작품들로 유럽에서 문명을 날려온 스위스 작가 우르스 비트머(71)는 소설로 이 질문에 답한다.

자전적인 가족사 소설 연작의 1, 2부 격인 두 작품에 그는 떠올리기만 하면 애(愛)와 증(憎)의 격렬한 감정이 교차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인생을 담았다. 먼저 발표된 <어머니의 연인> (2000)은 평생을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마음 속에 품고 살다가 팔십이 넘은 나이에 창 밖으로 몸을 던진 어머니의 비극적인 운명을 다뤘다.

동일한 연애 경험이 있다 해도 두 남녀가 품는 감정의 크기와 깊이, 여운은 제각각이기 마련이다. 어머니의 인생은 '더 많이 사랑한 자'의 비극으로 요약된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빛나는 미모를 자랑했던 젊은 시절의 어머니. 위대한 지휘자가 되겠다는 열정밖에는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청년 에트빈과 사랑에 빠지면서 그녀의 인생은 변전된다

. 에트빈이 이끄는 청년관현악단은 전위적 현대음악가들에 대한 창조적인 해석으로 음악계의 주목을 끌고 그는 유럽의 1급 지휘자로 우뚝선다. 관현악단의 매니저 노릇을 자청해 에트빈과 밀회를 즐기며 장밋빛 인생을 꿈꾸는 어머니. 그러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쓰러지자 에트빈은 그녀에게 한 마디 언질도 없이 기계회사 사장 딸과 결혼하고, 그녀의 꿈은 산산조각난다.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도 갖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애정없는 결혼생활뿐이다. 실연의 고통을 잊기 위해 정원 가꾸기에 미친듯이 몰두하는 그녀를 묘사하는 문장들은 슬픔을 증폭시킨다. "어머니의 온몸 세포 하나하나가 에트빈을 불렀다. 곧 모든 새들이 에트빈을 노래했다. 흐르는 물소리도 그의 이름을 불렀다. 바람은 그의 이름을 속삭였고 태양은 그의 이름을 그녀의 살갗에 새겼다."

<어머니의 연인> 이 '한 인간의 고집스러운 정열에 관한 레퀴엠'이라면, 비트머가 4년 뒤에 발표한 <아버지의 책> (2004)은 실제 문학평론가였던 아버지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작품은 고원한 이상에 매달려 있지만 생활에는 무력한 문학자, 예술인들에 대한 씁쓸한 풍경화다.

중세문학을 전공한 아버지는 한평생 책을 사랑하고 수집하고 번역하는 데 몰두한 인물. 독일군이 언제 스위스를 침공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 군에 징집된 아버지는 막사에서도 중세시대의 문학을 소재로 소설을 쓰는 등 자기세계에 함몰돼 있다. 작가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스페인내전 등 격렬한 이념 대결이 휩쓸고 간 20세기 전반 유럽을 무대로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일의 고뇌'라는 진중한 주제를, 아버지의 삶을 모델로 위트있는 문체로 그려냈다.

벨라 버르토크(1881~1945ㆍ헝가리 작곡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ㆍ프랑스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1883~1969ㆍ바우하우스 초대 교장) 등 작품 속에 숱하게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을 통해 현대 미술과 건축, 예술에 대한 작가의 깊은 이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소설 읽기의 또다른 즐거움. 작가가 자신을 모델로 쓴 가족사 소설 연작의 세번째 작품인 <난쟁이로서의 삶> (2006)도 곧 번역될 예정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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