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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의 논형] 나라의 품격과 전통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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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의 논형] 나라의 품격과 전통음악

입력
2009.07.0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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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도 개인처럼 품격이 있다. 이를 국격이라고 한다. 아무리 돈이 많고 군사력이 강해도 품격이 없으면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인류를 재난으로 몰아넣는 괴물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선진국이나 강대국을 꿈꾸는 나라는 국격을 높이기 위해 진력한다.

대한민국의 경쟁력과 국제적 위상은 한국인의 이미지와 문화의 격조를 떠나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국가브랜드(national brand)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한류든 한식이든 한복이든 모두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품격과 경쟁력과 세계인들의 인식이 함께 할 때만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국가브랜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세계인들이 한국을 보는 시각을 올바로 정립하고자 하는 방향은 옳다.

황병기와 정대석의 연주

오랜 역사와 다양한 모습을 지닌 인도를 깊은 사유와 높은 격조를 가진 나라로 인식하게 한 것은 라비 샹카(Ravi Shankar)의 시타르(Sitar) 연주를 통해서다. 시타르 연주의 세계적 명인인 샹카는 인도 음악의 정수를 전파하며 인류에게 평화와 화해를 느끼게 하고 인간에 대해 근원적 사유를 하게 한다. 국가브랜드 사업이 아니라 한 명인의 음악이 인도 역사와 문화의 저력을 전 세계에 각인 시킨 것이다.

초여름 국립국악원에서는 '아름다운 미래로'라는 주제로 한국과 일본의 전통음악교류연주회가 열렸다. 일본의 역사 경제 교육 대중문화와 일본인의 삶을 어지간히 아는 사람도 일본인의 삶과 문화의 저류에 흐르는 원형질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비단 일본뿐 아니라 다른 외국을 이해하는 데도 공통적으로 마주치는 과제이다. 그런데 일본 전통음악 명인들의 연주는 현재 일본인들의 일상적 삶과 행위의 바탕을 이루는 심연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 문화의 깊이를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한국에서는 황병기 명인의 가야금 연주가 있었다. 황병기 선생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우리 음악의 전통과 현대를 관통하고 개량 가야금을 만들며 작곡과 연주에서 자유자재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한국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분이다. 황병기 선생은 세계적 인물이지만 그 연주는 단순히 음악만이 아니라 선생의 존재 전체가 한복이 가지는 격조와 한국인의 품성과 한국문화의 호흡과 결을 느끼게 한다. 샹카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가야금에 황병기 선생이 있다면, 우리 민족의 유일한 고유악기 거문고에는 정대석 선생이 쌍벽을 이룬다. 거문고는 고구려 왕산악이 만든 6줄의 현악기로 당시 중국의 칠현금과는 악기 시스템에서 전혀 다른 것이다. 16개의 괘와 6줄이 만들어 내는 음악은 광대 웅혼한 세계에서 깊고 현묘한 세계까지 펼쳐진다. 정대석 선생은 거문고의 명인으로 전통과 현대를 거침없이 넘나들고 작곡과 연주에서 거칠 것이 없다. 선생의 기량은 가히 세계적이다.

한국을 세계에 알린다고 할 때 무엇을 알릴 것이며, 무엇을 국가브랜드로 할 것인가.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질서에서 이른바 '돈 되는 것'을 먼저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부자나라를 따라잡을 수 없을 뿐더러 인류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한국은 무엇보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응축된 문화의 우수성을 인류 보편의 가치세계에 내놓는 것이다.

한국의 정신세계 알려야

한번 생각해보자. 황병기, 정대석 두 거장이 한복을 차려 입고 대편성의 가야금합주단과 거문고합주단을 이끌고 세계 일주 연주여행을 하며 우주와 인간, 생명과 평화와 상생을 추구해온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전파한다면 세계인들에게 이보다 더한 감동이 있을까. 야니(Yanni)의 아크로폴리스연주, 타지마할연주, 자금성연주 보다 백배의 감동을 전할 수 있다.

전 세계 골프장과 최고급 양주에 돈을 흥청망청하는 써대는 나라에 가야금합주단, 거문고합주단 하나가 없다. 생각이 없는 국민에게는 미래가 없다.

정종섭 서울대 교수 · 새사회전략정책硏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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