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살림이 큰 걱정이다. 정부 전망에 의하면 올해 재정적자는 51조원에 달한다. 또 국가부채는 지난해 308조원에서 366조원으로 늘어난다. 아직 선진국보다 낮은 편이지만, 지금과 같은 증가 추세가 몇 년간 지속되면 급격히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최근 IMF는 한국의 GDP 대비 정부 부채가 2014년에 51.8%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가 부채의 악순환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재정건전성 확보가 우선
실제로 선진국들은 1970년대 중반 석유 파동을 겪으면서 적자와 부채가 크게 늘어나 지금까지 적자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70년대 중반의 선진국과 매우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 국가재정이 급속히 악화하는가? 첫째 요인은 글로벌 경제위기이다. 정부가 경기 침체에 대응해 복지지출과 공공투자를 늘린 것은 불가피하고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재정사업은 일단 시작하면 경기침체가 끝난 후에도 계속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1년 정도의 한시적 사업으로 경기부양을 꾀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원칙은 곧잘 무시된다.
둘째 요인은 감세 정책이다. 경제위기 전부터 추진한 감세정책으로 엄청난 세수 결손이 발생할 전망이다. 결손 규모는 2008~12년, 5년간 89조원이며 2013년 이후에는 매년 24조원에 달한다. 감세는 투자 활성화 등으로 성장 잠재력을 높이지만, 재정적자가 커지고 거시경제가 불안정해지면 오히려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문제는 선택이다. 경제학에서 흔히 이야기하듯 공짜점심은 없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여러 국책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세금부담도 낮추면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국책사업ㆍ감세ㆍ재정건전성의 셋 가운데 어느 것을 포기할지는 정부와 국회가 결정할 일이지만, 지금은 재정건전성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재정건전성 악화는 정부가 여러 임무를 수행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서구 복지국가가 전반적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도 재정건전성 악화였다.
우리 정부는 아직도 교육, 복지, 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켜야 하는 데, 재정건전성 악화는 빚을 갚는데 급급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재정건전성이 포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책사업이나 감세는 특정 집단에게 당장 이득을 주는 반면, 재정건전성 악화의 피해는 국민 모두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정부가 "지금 재정적자를 내더라도 복지투자를 하면 나중에 성장률이 높아진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로 재정건전성을 경시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불안한 조짐이 나타났다. 현 정부는 일시적인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중장기적 시각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바랄 뿐이다.
대안 없는 정치싸움 걸림돌
국회의 대안 없는 정치싸움 역시 합리적 정책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국회의원들은 대의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좋은 정책을 제시하고 국민의 심판을 기다리기보다 거리로 뛰쳐나가 농성하는 것을 생존전략으로 삼는다. 입으로는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지만, 행동으로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잘못하는 일은 비판해야겠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너무나 아쉽다.
고영선 KDI선임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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