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관련법이 1일자로 시행되면서 근속기간 2년이 된 기간제 근로자의 해고가 현실화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법 시행 유예기간을 얼마로 할 것인지에 대한 공방만 계속할 뿐, 일자리를 잃게 될 근로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어떤 대책도, 비정규직 남용을 막는다는 당초 법 취지를 살릴 어떤 방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본보는 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면서, 입법 취지에 비춰 허술하게 설계된 비정규직법을 개선할 수 있는 해법을 2일 각계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법 시행 유예 여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견해차이가 있었으나, 조속히 근본적 대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했다.
‘법 시행을 유예할 필요가 있다’는 쪽은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며, 다만 유예기간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가 사용계약이 만료되면 일부 문제가 터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근본적 대책을 논의하지 않고 2년을 맞았다”면서 “당초 입법 취지에 맞는 법 개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늦었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중요하며, 이를 위해 최소한의 시간(유예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지금 나타나는 해고는 이미 예견됐던 것으로, 전체 일자리 숫자만 보면 해고된 자리에 또 다른 비정규직이 취업을 하는 것”이라며 “다만 일자리를 새로 얻는 것보다 일자리를 잃는 데 따른 사회적 불안이 더 큰 만큼 일정기간 유예기간을 두되, 그 동안 미뤄져 온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예기간을 두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견해도 많았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 시행을 유예하는 것은 혼란을 일시적으로 뒤로 미루는 것일 뿐, 문제해결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도 “시행을 해보고 어려우면 유예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연기하겠다는 심산”이라며 “시행을 유예하든, 정규직 전환기간을 연장하든 이는 ‘폭탄’을 돌리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에는 법 시행을 유예할 경우 또 다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무한정 늦춰질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있다.
근본적인 대책과 관련해선,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 뿐 아니라 외주화 등 법망을 피하기 위한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 비정규직 사용사유의 제한, 차별시정제도의 실효성 제고, 정규직으로의 전환비율 제고,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개선 등 현행 고용구조를 전면 손질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2년 전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남용을 없애겠다’는 입법 취지로 돌아가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도 경영계와 노동계의 입장에 따라 근본 대책에 대한 강조점이 상당히 엇갈렸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계에서 사용사유 제한을 주장하고 있지만, 사용사유는 사용자에게 맡겨야 한다”며 “근본적으로는 2년으로 돼있는 기간제 사용기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정규직 해고가 어렵기 때문에 고용조정의 부담이 비정규직에게 다 쏠리는 것”이라며 “비정규직 문제 해법은 정규직 과보호 해소와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김성희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소장은 “현행 비정규직법이 사용기간 제한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상시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사용을 금지하고 일시적 업무에만 이를 허용하는 사용사유 제한 규정을 마련해 사용기간 제한의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는 “원래 입법 취지이자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는 것”이라며 “사내 하도급이나 용역근로자 등도 유사 업무 종사자와 차별이 있으면 차별시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근원적 대책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앞으로의 논의과정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경준 KDI 연구위원은 “지금의 혼란은 당초 법 자체가 불완전했고, 지난 2년을 근본적 논의 없이 허비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노ㆍ사ㆍ정이 큰 틀에서 대타협을 위한 원칙적 합의를 해나가는 노력이 없으면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이라고 말했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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