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지만, 한때 일본을 다녀오는 여행객들은 조지루시의 '코끼리밥솥'을 구입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국산 밥솥에 비해 보온이 오래가고 밥맛이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 밥솥의 기술력은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으나 이후 국내 밥솥전문 회사들이 우리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경쟁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고, 최근에는 국내 밥솥시장에서 일본제품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즉석밥 시장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200여개 회사가 난립하고 있으면서도, 백미위주의 제품일색인 일본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쌀품종을 다양화하고, 영양을 가미하는 가 하면, 반찬없이도 먹을 수 있는 덮밥을 내놓는 등 아이디어 넘치는 제품들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즉석밥 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그야말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인 셈이다.
국내에 즉석밥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96년으로, 당시 CJ제일제당은 일본의 즉석밥 회사로부터 수입한 기계로 제조한 제품에 '햇반'이라는 이름을 붙여 시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내에서조차 '맨 밥을 누가 돈 내고 사먹겠느냐'는 반대가 있었을 정도로 생소했으나, 핵가족화로 독신가정이 늘면서 햇반은 예상을 깨고 히트상품으로 자리잡았고, 1,300억원대에 달하는 즉석밥 시장에서 맏형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햇반의 독주가 계속되자 농심, 오뚜기, 동원F&B 등 굵직굵직한 회사가 '타도 햇반'을 외치며 즉석밥 시장에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농심은 2002년 일본내에서 최고의 쌀품종으로 알려진 '고시히카리 쌀밥'을 내놓은 데 이어, 노화와 활성산소를 감소시키는 데 효험이 있는 흑미를 재료로 한 명품쌀 '고시히카리 흑미밥'을 선보이며 즉석밥 경쟁시대를 열었다. 농심은 또 경상, 전라, 충청, 강원 등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을 엄선, '고향산천쌀밥'을 시리즈로 출시,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2004년 즉석밥 시장에 뛰어든 오뚜기는 즉석밥의 다양성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미인 '오뚜기밥'과 함께 '오뚜기 덮밥' '오뚜기 리조또' 등 3가지 타입에 17가지 제품을 내놓았다. 특히 오뚜기 덮밥에는 낙지덮밥, 마파두부밥, 카레밥, 짜장밥, 오삼불고기덮밥, 춘천닭갈비덮밥 등 다양한 메뉴를 첨가, 별다른 반찬없이도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최근 새롭게 선보인 '오뚜기 강황밥'은 국내 최초의 기능성 즉석밥으로, 강황의 주요 성분인 커큐민을 첨가하여, 맛과 영양을 동시에 충족시켜주고 있다.
가장 최근(2007년) 뛰어든 동원F&B의 '쎈쿡'은 초심으로 돌아가 '집 밥에 가장 가까운 맛'이라는 컨셉트로 소비자의 입맛을 끌고 있다. 100% 국산멥쌀로 만든 '쎈쿡 찰진밥'은 쌀미강추출물 등 첨가물을 사용하고, 초고압 공법을 통해 쌀과 물만 사용, 갓 지어낸 밥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쎈쿡 100% 발아현미밥'은 식이섬유, 단백질, 칼슘, 인, 비타민 등의 영양분이 풍부해 당뇨환자에게 좋다고 알려져 있고, '쎈쿡 팔곡밥'은 맵쌀, 찹쌀, 현미, 율무, 녹두, 흑미, 찰수수, 검은콩 등 8가지 곡물을 사용, 균형을 잃기 쉬운 현대인의 영향 균형을 맞춰주는 영양식으로 자리잡았다.
후발주자의 성장에 CJ 제일제당도 백미밥 외에도 곡밥, 흑미밥, 오곡밥, 검정콩밥, 찰보리밥 등 6종의 즉석밥을 상품화하고 있다.
이창용 CJ 제일제당 쌀 가공연구팀장은 "처음에는 일본의 기술을 도입했기 때문에, 시장규모나 상품 품목 등은 비교할 수 없지만 한국인의 입맛이 일본인과 엄연히 다른 만큼, 차별화한 공정기술을 꾸준히 개발해 왔다"며 "일본을 뛰어넘어 햇반이 밥 맛의 세계적인 표준이 되기 위해 기술 국산화 등 연구개발에도 끊임없이 투자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창만 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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